“여자라 행복해요”
어느 대기업 전자회사의 냉장고 광고 문구다. 몇 억의 출연료를 받는 여성 배우가 화사한 얼굴로 ‘여자라서 행복해요’라고 말 할 땐 남자도 한번쯤 여성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2006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정말 여성이라서 행복할까?
여성의 ‘사회진출’, 임금 노동자로 취업이 활발해 지면서 맞벌이나 직업을 갖는 여성들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런 현상은 외환위기 이후 더 확연해졌다. 이에 따라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도 증가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곰곰히 따져보면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취업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성이어서, 노동자여서, 그리고 비정규직이어서 이중 삼중의 차별을 받고 있다.
여성 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
올해 35세의 한 기혼 주부는 지난 9월 7일 서울무역전시장에서 열린 여성 취업박람회에 일자리를 알아보러 나갔다. 그러나 이 주부는 계속 구인 공고 게시판만 바라봤다. 면접은 한번도 못했다. 늦게 온 탓도 있지만 전공인 관광학 경력을 살리고자 해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 대부분 학습지, 금융영업, 시설관리 등에 한정돼 있었고 게다가 거의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이더라도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전공분야’에 가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포기하고 또 다음 기회를 기다릴 작정이다.
이 주부는 "대부분의 기업체들이 기혼 여성의 결혼 전 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쏟아낸다. 박람회에 계속 와보지만 업체들이 한정돼 있고 일자리도 그다지 다양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한정적이고 맘에 드는 직장을 찾을 수 없단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씁쓸해 했다.
지난 9월 8일 열린 여성취업창업박람회에서 한 여성 구직자가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그래도 이 주부는 자신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기다릴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조금 나은 편이다. 신자유주의가 확대되고 빈곤층이 점점 늘어나면서 산업전선으로 내몰리는 많은 기혼 여성들은 당장 적자인 가계를 메우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거나 이에 맞게 자신을 재계발할 여유도 없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쫒아 불나방처럼 달려들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특히 기혼 여성으로서 취업하는 데에는 많은 제약과 어려움이 따른다. 남성 권력 중심의 구조에서 여성은 권력에서 소외되고 주변화돼 있는데다가 여성 노동을 남성 노동의 하위로 인식하는 구조가 굳어져 있어 여성 노동시장은 크게 왜곡돼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은 이제 50%를 넘어섰다. 한국 사회의 여성 취업자는 천만 명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여성 임금노동자는 610만 명에 이른다. 이 중 여성 비정규직 비율은 매우 높아 2004년 기준으로 69.1%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이는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 46.2%보다 월등하게 높은 수치로,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비정규노동』 2004년 12월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더 낮아 가히 차별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임금을 100%(233.0만원)으로 할 때 남성 비정규직은 57.0%(132.9만원) 수준이다. 여성 노동자의 경우는 정규직을 100%(158.1만원)으로 할 때 비정규직은 54.9%(86.8만원)에 머무르고 만다. 가장 큰 차이를 비교해 보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남성 정규직 노동자 평균임금의 37.3%에 불과하게 된다.
이렇게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은 저임금으로 비정규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 업무는 따로 있다? 성별 분리로 여성 노동 주변화
여성 비정규직 비율이 월등히 높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성 노동시장 대부분이 업무 자체가 외주, 위탁, 도급화로 비정규직화 되어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 업무는 대부분 서비스 업종, 금융영업, 건물청소 등의 시설관리 업종에 몰려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여성 노동시장에 대표적인 12개 직종이 있다. 생명과학 및 보건 전문가, 교육전문가, 생명과학 및 보건 준전문가, 교육 준전문가, 고객봉사 사무직원, 대인 및 보호서비스직, 모델, 판매원 및 선전원, 농어업 숙련 노동, 기타 기능원, 행상 및 단순 서비스직, 농림어업 및 관련 단순 노무자, 채광 건설 제조 및 운수 관련 단순 노무가 그것이다. (최상림, 여성 노동운동 지평 확산을 위한 연대 모색의 방향, 전태일 35주기 기념 토론회, 2005)
이 가운데 전문직은 단 2개에 머무르고 대부분이 단순 노동, 서비스 및 판매와 관련된 직종에 한정돼 있고 이 업종들은 대부분 외주, 도급, 위탁화가 거의 진행된 업종들로 비정규직으로 채용되고 있다. 여성 노동자의 77%(2000년 기준)가 이 12개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걸로 조사돼 성별분리 업종에 따른 여성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가 구조화 되어 있는 상황으로 나타났다.
특징적인 것은 이 가운데 많은 업종이 위장적 고용 관계, 즉 특수고용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업종으로 학습지교사, 골프장 경기 보조원, 보험모집인, 방문판매원, 텔레마케트, 애니메이터, 수금원 등이 있다. 여기에 취업한 노동자는 2002년 통계청 발표 기준으로도 74만 8천 명에 이르고 있고 이 중 여성이 61.7%를 차지하고 있어 매우 높은 비율을 나타낸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그 특이한 위장적 고용관계 때문에 실질적으로 고용된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근로기준법은 물론 노동기본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노조 설립에도 어려움이 많고, 설립한다 해도 교섭 대상이 없는 이상한 상태에 놓여 구조적인 무권리 상태에 빠지게 된다.
여성 노동의 높은 비정규직 비율은 여성 노동을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것으로 인식해 가치를 낮게 두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한 예로, 충북의 한 방송사는 남성 아나운서는 정규직으로 여성 아나운서는 비정규직으로 구분해 채용했다. 이 문제는 나중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로 진정됐다.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의 최진협 활동가는 “여성의 노동(특히 기혼여성)을 ‘애들 학비나 벌려는’ 부차적이고 남성 노동의 보조적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며 “ 때문에 저임금으로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려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장지연 연구원은 성별직종 분리에 대해 “직종의 성별 분절화가 성별 임금격차를 초래하는 매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성별 분리는 여성 노동에 대한 주변화와 성적 착취를 가속화 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꽃으로 남아라?
“명절날 집에도 못가고 추운데 한복 차려 입고 손님들에게 영접 인사 나올 때면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KTX 여승무원의 말이다.
철도공사는 고속철도 KTX를 개통하면서 열차 하나에 3명의 여승무원과 한명의 팀장을 두고 객실업무와 승하차서비스, 검표 작업, 객실내외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팀장은 철도공사 소속으로 정규직이었고 남성이었다. 여승무원 3명은 비정규직으로 당시 홍익회 소속으로 채용되어 파견 형태로 근무하고 있었다. KTX에서 근무하는 팀장과 승무원은 같은 업무를 담당했지만, 팀장은 승무원을 관리하고 지시하는 위치에서 근태를 평가하는 등 관리자의 위치에 있었다. 간단히 말해 정규직 남성의 지시를 받는 비정규직 여승무원이 한 열차에서 일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KTX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비정규직 여승무원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정도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 또 부정승차 검표 업무를 통해 수익이 생기면 성과가 정규직 팀장에게 돌아간다.
지금까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KTX승무원 박희진(가명, 26세)씨는 성별 분리에 의한 차별적 상황에서 일을 하는 게 힘들고 별로 동료의식도 없다고 전한다. “팀장이 소속이 다르다며 선을 그을 때가 있다. 크게 동료라고 느낀 적은 없다. 어차피 소속이 다르니까….”라며 이질감을 나타냈다. KTX 내에선 확연한 성별 구분이 있다. 박희진 씨는 “남성들은 정규직인데 여승무원 자체만 외주화돼서 비정규직이란 게 완전히 모순이다. 여승무원직 자체를 젊고 예뻐야 된다는 이미지로만 취급하고 있지 않나? 그러니 아무래도 비정규직이 쓰기 편할 것이다. (젊고 예쁜건 오래 가기 어려울테니) 언제든 쉽게 채용해서 쉽게 해고하겠다는 의도 아닌가?” 라며 여승무원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여승무원이란 직제는 KTX 내에서 남성 정규직, 여성 비정규직이란 등식을 만들어 놓고 있다. 지난 8월 31일에 진행한 KTX불법판정 촉구 연대 집회에서.
실제 철도공사는 여승무원들의 외모 관리 규정을 따로 만들어 두고 강제했다. 어느 1기 여승무원에 의하면, 철도공사는 항공사 승무원 출신의 ‘서비스마스터’란 사람을 두고 승무원들의 외모를 관리했다. 귀고리는 반드시 해야 되고 매니큐어는 어느 회사 어떤 제품, 구두는 통굽은 안 되며, 안경은 쓰면 안 되며, 아이셰도우는 ‘샤넬00’을 쓰도록 강요하고 출무 시간에 일일이 점검했다. 이 승무원은 “어떤 사람은 알레르기가 있는 데도 귀를 뚫게 했다. 남자는 비교적 자유롭고 새마을호도 그렇지 않은데 우리만 그랬다. 나중에 반발해서 흐지부지 됐지만 우리를 상품 취급하는 것 같아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젊고 예쁜 사람을 좋아하니까….”라며 씁쓸해 했다.
여성이라 받는 차별, 비정규직이라 더 서러워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은 2006년 상반기 상담 결과를 분석했는데, 직장 내 성희롱, 모성보호 불이행, 폭행 등 비정규직 차별로 인한 상담 건수가 전체 219건 중에 45건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성희롱과 성차별에 많이 노출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여성에 대한 성희롱과 성차별이 정규직, 비정규직을 구분하는 건 아니지만, 성범죄가 권력의 우위에서 비롯된 문제임을 감안한다면, 상대적으로 고용이 불안하고 노조 등의 보호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성차별과 성희롱에 비정규직 여성들은 더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됨은 분명하다.
사장한테 잘해야지 어느 사주를 받아서 사장을 잘 모시지 못하냐며 자기 노조에선 나 같은 사람 당장 자른다고 모욕을 줬다. 사장은 허리에 손을 두르는 등 성희롱을 했다. 나는 그게 성희롱에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딸 같아 그러는 거라고… 술은 어쩔 수 없이 따랐고 3잔 이상은 따르기 싫다는 말을 하였더니 사장과 노조위원장은 그런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며 ‘너한테 술 못 받아서 환장한 사람 아니다. 내가 정직원 시켜줄 기회 두 번이나 줬는데 넌 다 놓쳤다’라고 말했다. -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 상담 내용 가운데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을 빌미로 한 성희롱에 많이 노출돼 있다. 직장 상사나 사장에게 성희롱을 당해도 해고되거나 불이익을 당할까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거나 해결할 통로를 갖지 못해 혼자 참아 내거나 심한 경우 직장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인천에서 가정 방문 학습지 교사를 하고 있는 한 여성은 “관리자들이 밤 늦게 전화해서 술한잔 먹자고 그러는 경우가 있다. 나는 나이도 많고 노조도 하니까 대꾸도 안하고 거절할 수 있지만, 국장이나 파트장들이 그러면 거절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특히 젊은 사람들은 무슨 일 있나 싶고 계약해지에 대한 염려 때문에 거절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전했다. 이런 경우엔 해고 등으로 이어진다는 위기감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데 어쩔 수 없지 않냐?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2005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경찰청을 포함한 13개 공공기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실시한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20대 노동자의 44.2%가 성희롱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그 중 89.6%는 신분상의 이유로 그냥 참는다고 답해 불안한 고용 형태가 이런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정기 야유회가 있었는데 야유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여자친구가 폭행을 당하였다. 주변에서는 “준사원 주제에 ×년이…”, “저런 년은 정규직 올리지 말아라”, “저런 년은 짤라 버려라”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 상담 내용 가운데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은 이에 대해 “비정규직의 불안한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 인격무시, 폭언폭행은 여성노동자의 고용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계약해지 등 피해자 불이익을 염려하여 사건 공개를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공식적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통로가 없어 개선 방안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모성보호 측면에서 제정된 생리휴가를 제대로 쓰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매우 드문 상황이다.
KTX승무원은 생리휴가를 원하는 날짜에 쓸 수가 없었다. 사측이 인력 부족을 이유로 인원을 제한하고 일자도 제한했기 때문이다. KTX부산지부의 경우엔 주말에 못쓰게 했고 월요일에도 5명으로 제한해 인원이 몰릴 땐 제비뽑기를 해서 휴무자를 정할 정도였다. KTX승무원 박희진씨는 “형식상으로 생리휴가라고 만들어 놨지 실질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날짜에 쓸 수가 없었다. 생리휴가 취지가 없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2005년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노동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리휴가 비율은 0%였으며 여성부 비정규직 노동자도 생리휴가를 쓴 비율이 0%로 나타났다. 이는 생리휴가가 2005년 무급으로 처리되면서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이유도 있지만 불안한 고용과 근무 평점에 영향을 끼친다는 우려로 노동자들이 제대로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성보호권 미흡은 출산 기피와 경력 단절로 이어져
출산휴가(산전후휴가), 육아휴직 등 모성보호 권리는 근로기준법 72조와 남녀고용평등법 19조에 명시되어 있다. 당연히 지켜져야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이는 불안한 고용 상태의 여성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특히 취약한 점이다.
내년 3월 1일까지 계약이 되었는데, 현재 임신 중이고 9월에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그런데 회사에서 계약직은 출산휴가가 없다고 하면서 사직서를 쓰라고 한다. -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 상담 내용 중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부장은 ‘출산 후 휴가 동안 회사에서 추가적 경비를 투자하여 사람을 뽑아야 하느냐? 출산 후 아이가 아프면 결근을 할 것이 아니냐?(아이가 아파도 출근하겠다는 각서를 쓰란다) 입사 때 당장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입사 때 그렇게 말하고 임신하였으면, 이거 사기 취업 아니냐?’라고 한다. -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 상담 내용 가운데
불안한 고용은 임신과 출산을 기피하게 만든다. 혹 출산을 하더라도 법에 명시되어 있는 90일의 산전후휴가를 쓰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규직에게도 어려운 산전후휴가를 쓰려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퇴직과 맞바꿀 정도의 ‘용기’가 필요한 지경이다.
2005년 최순영 의원이 실시한 앞의 실태조사를 다시 보면 임신, 출산 경험자 가운데 43%가 산전후휴가를 사용하지 못했고, 97.8%는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 응답자의 78%가 재계약 거부 등으로 직장을 잃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답해 모성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걸로 나타났다. 그나마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은 상황이 좀 낫다고 해야 할까? 사기업을 포함한 여성 비정규직의 모성권 보호 실태는 훨씬 더 열악한 상황이다.
정규직을 포함한 여성 임금 노동자 가운데 하위 40%는 유급출산휴가를 6.2%만이 썼다. 상위 40%는 35.4%를 썼는데, 이도 결코 높은 수치가 아니다. 여성 노동자 전체를 봐도 21.7%에 머무르고 있다.
이렇게 모성보호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데에는 사측이 기피하는 이유도 있지만 처벌이나 규제가 잘 되지 않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 산전후휴가 지급 규정을 어겼을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돼 있다. 그러나 실제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김진 변호사는 “(처벌이) 잘 안되고 있다” 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약)기간이 있기 때문에 (사측이) 재계약을 빌미로 사표를 요구하기 때문에 처벌이 잘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안한 고용 형태와 차별적 관행으로 인해 모성권 보호가 미흡하다 보니 당연하게도 출산기피와 사회적 저출산 현상으로 이어지게 되고, 설혹 출산을 하는 경우에는 사측의 압박과 양육의 어려움으로 퇴직을 하는 경우로 이어진다. 이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경력 단절을 의미하며, 또한 경력 단절은 이후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때 비정규직 취업으로 연결되면서 여성 노동의 비정규직화는 더욱 확대재생산되는 것이다.
여성 취업은 M자형, 경력 단절로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재취업
올 해 37세의 두 자녀를 둔 오아무개씨는 남편과 이혼 뒤 어려워진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구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나이와 특별한 경력이 없는 오씨는 성과에 따라 상대적 고임금을 받을 수 있는 학습지 교사를 시작했다. 그나마 대학 졸업장이 있어 가능했다. 그러나 학습지 교사는 만만치가 않았다. 오씨는 너무 힘들어 그만 둘까 했지만 생계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뛰어 다녀야 했으며 더 많은 임금을 위해 어떤 때는 밤 12시까지 일해야 했다. 오씨는 결국 소득이 줄더라도 업무량을 줄이기로 했다.
오씨는 “나이 많은 주부가 나가서 할 수 있는 일 자체를 찾기 힘들고 대학이나 졸업했으니 10년 정도 지나도 애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기혼에 ‘나이 든’ 여성 취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혼 여성은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경력 단절, 나이 제한 등에 걸려 취업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 여성 비정규직 취업의 양태는 연령에 따라 M자형 곡선을 그린다. 20대 중반에 가장 높은 취업률 수치를 나타내다 점점 떨어져 30대 초반에 이르면 가장 낮은 취업률을 나타낸다. 취업률은 이후 다시 높아져 40대 초반에 이르면 20대 초반 이후 가장 높은 취업률을 나타내다 다시 낮아지는 형태를 띤다.
이는 출산과 양육으로 미취업 상태에 있던 여성들이 자녀의 성장에 따른 양육 부담의 감소와 경제 사정으로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양태이다. 이런 양태는 남성의 역U자형 양태와 잘 비교된다.
문제는 30대 이후 높아지는 취업률과 비례해 비정규직 비율도 높아진다는 점이다. 노동시장이 기혼 여성이나 30대 이후의 여성들에게 비정규직을 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여성들이 주로 취업 가능한 12개 업종 대부분은 이미 외주, 도급, 위탁화가 거의 진행된 상태이기 때문에 재취업 여성들은 ‘비자발적’으로 비정규직으로 취업하게 되는 것이다. 취업 박람회에서 만났던 한 중년 여성의 말대로 “정규직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현실이 되고 만다.
이와 비교해 정규직 여성의 취업 양태는 20대 후반 정점에 오르다 이후 급격히 낮아지는 A자형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25~29세의 정규직 여성이 52만 3천명으로 정점에 오르다 30~34세에 이르면 28만 5천명으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이후 계속 낮아진다. 이렇게 정규직에서 멀어진 여성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흡수되는 상황이다.
여성 노동의 주변화는 저임금과 고용 불안, 빈곤으로 이어지는 '여성비정규직 게토화'를 가속화 시킨다. 3월 8일 여성노동자대회.
지난 2005년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한 『한국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여성노동운동』 토론회에서 한국여성개발연구원의 박수미 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상용직 여성노동자가 다시 상용직으로 가는 경우는 36.39%에 머무른 반면 임시/일용직으로 가는 경우는 52.97%에 이르고 있다. 이에 비해 임시/일용직에서 상용직으로 가능 경우는 3.72%로 아주 낮은 수치이고 다시 임시/일용직으로 가는 경우는 86.32%에 이르러 여성들은 비정규직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긴 힘든 구조에 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박수미 연구원은 이런 현상을 “우리 사회 여성 비정규직의 증가는 ‘여성노동의 게토화’의 중요한 지표”라고 설명했다.
“노조 만드니 관리자들이 함부로 못하더라”
여성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노조는 유력하고 실현 가능한 통로이다. 한국여성개발연구원의 강민정 연구원은 “이미 한국의 법과 제도는 사실 그리 나쁘지 않다. 잘 지켜지지 않는 게 문제다. 그런 점에서 노조 등 조직화가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성의 노조 조직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매우 낮은 실정이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 자체가 12.8%로 매우 낮은 수치이고 노조가 없는 경우는 76%에 이르고 있다. 이는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지 않을 때이고, 여성 노동자만 놓고 보면 전체 여성 노동자의 6%만이 노조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여성의 조직율은 더 떨어져 전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가운데 1% 정도만이 노조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김종숙, 강민정, 정형옥, 여성비정규직 노동의 특성과 정책과제, 한국여성개발원, 2005) 이처럼 낮은 조직율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통로로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전국여성노동조합의 빈순아 조직국장은 “여성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조직 문화에 덜 익숙한 면도 있지만 노조 만들면 바로 해고되고 그 싸움이 지난해 성과가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낮은 조직율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한국 비정규 노동의 특성상 노조 결성이 쉽지 않으며 결성해도 교섭대상이 확실하게 나와 주지 않는 상황과 관련된다.
고려대시설관리지부의 한 50대 여성 조합원은 “노조 만들고 많이 좋아졌다. 월급도 2만 원 올렸다. (노조 설립)전엔 관리자들이 욕설하고 함부로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욕설을 일삼던 관리자도 내 쫓았다. 노조는 필요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가입을 권하고 싶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아직 초창기라 판단하기 이르지만 고려대시설관리지부는 좋은 사례에 속한다. 힘없고 나이 많다고 여겨져 온 아줌마들이 필요를 깨닫고 조직화를 통해 대응해 눈에 드러나는 성과를 낸 것이 주효했으리라. 이는 여성 노동자들의 노조에 대한 기대로 곧바로 이어졌다. 고려대시설관리지부의 김순희 지회장은 “처음에 만들 때 힘들었다. 노조를 만들려고 하자 회사에서 노조 간부들을 ‘자장면 시켜먹고 놀려고 그런다’며 방해했다” 면서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렇게 해서 2005년 6월에 설립된 노조는 직원 69명 가운데 60명을 조직하는데 성공했다. 노조는 2006년 임단협을 준비하고 있다. 힘없고 더러운 일을 하는 ‘아줌마’들은 노조를 만들고 단협을 하고 임금을 올리고 고용을 보장받아 가고 있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중요하지만 여전히 낮은 수치이며 조직화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빈순아 국장은 “어릴 때부터 수동적인 자세를 주입받아 조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다고 설명하며 “조직화 하는 데는 여성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접근해야 한다. 우선 대화를 시작하는게 중요하다”고 거듭해 강조한다. “민주노총이 미조직 사업장을 조직화 한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활동가들을 봐라. 대부분 남성들이다. 기존의 남성 노동자 조직화 방식으로는 안 된다. 100% 실패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여성의 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빈순아 국장의 말대로 여성의 조직화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고통의 당사자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투쟁을 만들어나가는 일이 자본주의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에 의한 여성 착취와 비정규직이라는 이중의 굴레에 속박되어 고통받는 비정규 여성 노동의 문제를 보다 근원적으로 극복하는 가장 멀고도 빠른 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