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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슴도치 가족사
    [7회] <가상 시나리오>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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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경동(시인) cast@cast.or.kr
    우린 고슴도치 가족이다.
    모두 주로 밤에 일을 한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야행성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아파트로 일을 나가는 아빠고슴도치는 그것이 IMF와 한미FTA라는 것을 거친 이후부터라고 하고, 한때는 정규직고슴도치로 사육을 당해보기도 한 큰오빠고슴도치 말로는 그것이 자동화와 정보화 시대의 도래와 함께 되었다고 유식한 말을 하고, 작은오빠고슴도치는 아니라고 노동시장유연화 정책 때문이었다고도 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우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원래 야행성인 고슴도치족들이니 야간일을 얻은 게 다행이지 않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모르는 소리다. 지금의 밤은 옛날처럼 달과 별이 떠 있는 고즈넉한 밤이 아니다. 일하고 싶은 만큼만 일하는 그런 밤이 아니다. 우리의 일터엔 밤새도록 환한 불이 켜져 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관리자들과 그것도 모자라 CC카메라의 검은 눈이 밤새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그런 밤이다. 이런 밤은 자연의 밤이 아닌 끔찍한 인공의 밤일뿐이다.


    내가 세상에 나와 무슨 일인가 해야 할 때 낮에 나가 먹이를 찾을 곳을 얻는 일이란 가뭄에 콩나듯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나도 낮에 거리를 배회해 본 적이 많다. 모두가 나의 경쟁자 같은 사람들. 모두가 눈이 충혈되어 낮에 먹이를 구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떠돌아 다녔다. 아니면 움켜쥔 먹이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모두가 가시를 빳빳이 세우고 있어서 무엇 하나 물어보기도 쉽지 않았다. 자연스레 낮의 공간은 우리처럼 하루 먹이에도 허기진 짐승들의 시간이 아닌 얼굴이 하얀 사람들의 시간이라는 것을, 그들만의 공화국이란 것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두발로는 부족해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작은 일에도 움츠리게 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고, 보기 흉한 가시를 누구나 몸에 달고 다녀야 하는 천형을 타고 났는데 그들은 늘 허리를 곧게 펴고 두 발로 걸어 다닌다. 우리가 걸어다녀야 하는 도로는 좁고 그들을 위한 차가 다니는 도로는 넓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소수의 그들에게 지상의 길들을 내어주고 우리는 만원의 지하철에 실린 채 지하 굴 속을 타고 다녀야 했다. 낮에 먹이를 찾는 일에 지친 나도 자연스럽게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야간에 수채구멍이나 쓰레기통을 주로 뒤지는 일을 하게 되었다.

    엄마고슴도치는 삼일에 한번씩 대학병원으로 일을 갔다가 삼일 만에 돌아온다. 집이 멀기도 하지만 차비를 아끼기 위해서라고 한다. 병원 구내에 밥을 사먹는 곳도 있지만 워낙 비싸 밥을 열 덩어리씩 얼려서 간다. 끼니때 마다 하나씩 꺼내 환자 가축들이 사용하는 가스렌지에 뎁혀 먹는다고 한다. 그런 엄마고슴도치가 하는 일은 야밤에 다른 상처난 고슴도치들을 간병하는 일이다. 일명 용역직 간병고슴도치다. 그나마도 일자리를 탐내는 다른 용역회사 고슴도치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얼마전에도 다른 용역회사 사람들이 좀더 값싼 용역직고슴도치들을 한 무더기 몰고 와 엄마고슴도치의 용역회사를 밀어내려고 했다고 한다. 워낙 엄마의 동료 엄마고슴도치들이 드세게 나와 간신히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하지만 그 통에 다시 임금이 3만원씩 줄었다고 한다. 싸움은 엄마고슴도치들이 했는데 용역회사가 앞으로 자리보존비 명목으로 리베이트 비용이 들게 되었다면서 용역고슴도치들에게 소개비 외에 비용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이었지만 그전처럼 정규직간호사 고슴도치노조가 있어 함께 도와주고 싸워주면 모를까, 그도저도 없어진 마당엔 용역회사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십여 년 전 한미FTA 당시 의료시장도 개방되며 의료시장이 급격히 사유화 자본화되었다고 한다. 이 통에 정규직 간호사들도 모두 비정규직 계약직으로 내몰리면서 그나마 기댈 곳조차 잃어버렸다고 한다.

    엄마고슴도치는 간병일을 하기 전에 우리처럼 먹을거리를 잃어버린 동물들의 최소 생존을 위해 생겨난 공공근로를 다녔다. 그때도 무의탁 노인고슴도치 돌보기 일을 해본 터라 그나마 환자고슴도치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이젠 여느 간호사고슴도치들보다 자신이 낫다고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엄마고슴도치가 벌어온 먹이로는 천정부지로 올라 버린 집 난방비와 전기세, 그리고 물세를 간신히 낼 정도였다.
    낮에는 가끔 그 상처난 고슴도치들의 가족들이 왔다 간다고 한다. 이때 잠깐 옷 갈아입는 라커룸이나 간병고슴도치 소개소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잠깐씩 눈을 붙인다고 한다. 자주 오면 좋으련만 그들도 먹고 사는 일에 바빠 황급히 왔다가 황급히 간다고 한다. 가족 간의 정이란 제때 제때 비싼 병원비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황송한 일이라 한다. 가끔 엄마고슴도치는 그래도 우리 가족들 중엔 아직 아픈 고슴도치가 없어서 행복한 일이라고 한다. 그나마 대학병원을 갈 수 있는 고슴도치들과 달리 우리는 하등급 의료보험을 내고 있기 때문에 병이라도 나면 정말 큰일이다. 질낮은 병원에서 더 비싼 병원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의료시장과 보험시장이 개방되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이 정글에서 10%도 안되는 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영생불노의 세상을 갖게 되었지만, 우리 같은 하급 짐승들의 건강권은 이제 보장받지 못한다. 값싼 환자라는 눈총이라도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서 가끔 아빠고슴도치는 옛날을 회상하기도 한다. 모든 세상이 이렇게 도시화, 자본화되기 전 옛날 마음껏 산과 들을 뛰어 다닐 때의 일이다. 그때는 나무 밑 움막이라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다고 한다. 아빠의 아빠 고슴도치는 이렇게 세상이 변하기 전엔 시골에서 농부고슴도치로 살았다고 한다. 그때도 물론 살림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밭에 파먹을 작물들이 널려 있고, 가축들도 기를 수 있어 지금보다는 나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정부는 이렇게 고슴도치들이 평화롭게 사는 꼴을 보지 못해, 그 많은 들을 다국적기업들에게 다 내주어 버렸다고 한다. 강제로 들판을 떠나게 했고, 자급형 농사를 못 짓게 했다고 한다. 대신 우리가 먹을 음식들을 외국에서 수입하게 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음식물들은 금싸래기보다 더 비싸졌고 우리 같은 평범한 고슴도치들은 엄두도 못낼 음식들이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 같은 비정규직 고슴도치들은 가끔 대형마트에 가면 사람들이 자신들이 키우는 애완동물에게 먹이는 수입용 사료 앞에 잠시 동안 머무르게 될 때가 많다. 가격도 일반 우리 먹이보다 훨씬 비싸고 영양가도 높을 것 같아 침이 꼴깍 넘어간다.

    집에서는 늘 한 가지 먹이로만 연명한다. 옛날 우리 고슴도치 부족들은 참 다양한 먹이를 먹었다고 한다. 기름진 육식과 채식을 골고루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 밥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과일은 정말 특별한 때 아니면 먹어보지 못할 진기한 음식이 되어 있고, 신선한 육류란 맛보기 힘들다. 모두 외국에서 수입되어 들어오는데 처음 우리 입맛을 깃들일 때는 무척 쌌지만 그후로 다국적 농산물기업들이 이윤을 위해 값을 천정부지로 올렸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식구들은 방구 냄새, 트림 냄새까지도 닮아 갔다. 먹는 게 같으니 냄새도 같을 수밖에. 우리도 가끔은 다른 사료를 먹어보자고 해보지만 식구들 모두 눈만 끔뻑끔뻑할 뿐이다. 누구라도 그런 꿈이 없겠는가.

    그나마 식구들이 밤일을 자주 다녀서 잠자리는 넉넉한 편인 게 다행이다. 지상을 모두 빼앗긴 우리 고슴도치족들은 주로 다세대나 연립이라고 불리는 허름한 콘크리트 건물들 속으로 내쫓겼다. 누구보다 흙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해 왔던 우리지만 그것은 먼 옛날 전설이 되어 버렸다. 재수좋게 반지하나 지하로 들어가는 고슴도치들도 있지만 그곳 역시 차디찬 콘크리트 더미로 가로막힌 우리에 지나지 않다. 흙냄새와 풀냄새보다는 곰팡이 냄새가 더 심하다. 바람 센 옥탑우리로까지 쫒겨난 고슴도치들도 많다.

    사람들은 낮은 임금으로 우리에게 일을 시키는 것 외에, 담합해서 우리가 살아야 할 땅과 집들의 가격을 상상외로 높여 버렸다. 태양도 들지 않는 집을 만들어 오히려 집세를 내게 했고, 난방비를 지불케했고, 전기료를 지불케했고, 물세를 내게 했다. 그마저도 처음엔 우리에게서 자연을 빼앗아 간 원죄가 있으므로 공공부문이라 해서 싸게 제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 이 사회를 휩쓸며 모두 물 건너갔다고 한다. 이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은 모든 것을 저희들의 것으로 사유화했다고 한다. 전기회사도, 난방회사도, 물관리공사도 모두 그들의 손에 들어가며 그 모든 것은 고슴도치들은 만져볼 수 없는 금값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아직 야성을 잃지 않은 고슴도치족들이 있어 거칠게 항의했지만 이미 고슴도치의 가시 정도를 넘어선 첨단 무기와 각종 이데올로기로 자신을 무장한 신자유주의 사람족들에게 대항하기란 이미 무리였다고 한다. 많은 고슴도치족들이 길거리에서 얻어맞고 감옥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가끔 쉬쉬 하면서 그런 얘기를 하는 고슴도치들이 있지만 누구도 그런 사실을 정확히 얘기해 주지 않는다. 혹여라도 관리직 고슴도치들이 들었을 때는 바로 아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잠자리나마 돌아가면서 편안히 잘 수 있게 된 것은 행복이다. 특히 나는 여자고슴도치이지 않는가. 내 나이 때가 되면 엉덩이도 커지고 부끄러운 게 많아질 나이다. 그런데 우리 집은 그런 배려를 해줄 만큼 크지 않다. 둥우리 두 칸에 조그마한 거실 하나가 전부다. 아빠, 엄마, 오빠 둘, 그리고 나까지 다 큰 고슴도치 다섯 마리가 살기엔 쉽지 않은 구조다. 그래도 큰 오빠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살만 하기도 했다. 아빠와 엄마가 둥우리 하나에서, 작은 오빠가 거실에서, 그리고 내가 조그마한 둥우리 하나에서 자며 그나마 황금분할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큰오빠고슴도치가 정리해고를 당하고, 이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집은 만원 전철칸처럼 비좁아졌다.

    모두가 비정규직이라 일거리를 찾아 나갈 곳이 없었던 지난해 여름 같은 경우는 더더욱 지옥이었다. 당시 목수일을 따라 다니던 아빠고슴도치는 허리를 삐끗해서 일을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름치 노임을 받기는 했다지만 근 두 달을 누워 지내야 하는 형편이었다. 하루라도 더 일을 해볼 욕심과 당장 생활비가 필요해 산재를 신청하지 않고 보름치 노임을 땡겨 받는 것을 택했는데 실상은 일도 빨리 못하고 병원비만 더 들었다.정규직이라도 해본 큰 오빠가 왜 산재를 신청하지 않았냐고 두고두고 아빠를 찔러댔지만 고성만 오갈 뿐이었다. 큰 오빠에게 돌아 온 소리는 “그럼. 니 놈은 왜 명퇴신청이라도 해서 돈이라도 좀더 받고 나오지 안일하게 앉아 있다 돈 한 푼 못 받고 짤리고 나왔냐”는 아빠의 독설뿐이었다.

    하여튼 지난해 여름은 우리 식구 모두에게 염화지옥 같은 나날들이었다. 엄마고슴도치는 2년이 지났다는 까닭으로 더 이상 공공근로도 시켜주지 않아 먹이를 찾아 나갈 곳이 없었고, 나는 이제 막 실업계 고슴도치학교를 마치고 사회 진출을 고민해야 할 때였다. 큰 오빠고슴도치는 외국계 자본이 다니던 회사를 M&A를 통해 장악한 후 주식차익만 잔뜩 빼먹고 다시 매각하고 떠나는 과정에서 새로 들어선 경영진이 기존에 일하던 고슴도치들의 인수를 거부하면서 자연해고당하고 말았다. 투자자-정부소송제도라는 것이 생긴 이후로 외국자본에게 그 무슨 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되면서 비일비재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오빠고슴도치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혹시라도 우리나라 정부가 기업의 인수합병시 일하던 고슴도치들의 고용이 무조건 승계되는 법이라도 만들면, 오히려 투자한 외국기업이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고소를 해서 자신들이 손해보는 이상을 받아갈 수 있도록 한 제도라고 하는데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겠다.
    이때 인간세상에서 살아 본 경험이 많은 아빠고슴도치는 오빠고슴도치에게 1차 명퇴신청을 받을 때 무조건 신청하라고 했다. 떡고물이라도 조금 남아 있을 때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빠는 간신히 처음 얻게 된 정규직 일자리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계약직으로 일할 당시부터 자신을 끌어당겨준 그 김 부장이라는 관리직 고슴도치를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당시 오빠는 그 회사의 출고직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서류 조작을 통해 김 부장의 부정축재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김 부장은 그 댓가로 말단 생산직이었지만 오빠를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만약 자신을 자르면 그 때의 일을 폭로하겠다는 마지막 카드를 오빠는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빽도 무용지물이었다. 모두가 자신만은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믿고 싶었지만 김부장도 오빠도 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새로 회사를 산 자본가는 그 회사의 땅이 가진 가치와 일부 라인만을 필요로 했을 뿐이었다.

    작은오빠 고슴도치는 당시 조그마한 전자회사에 비정규파견직으로 일을 했었다. 간신히 법정 최저먹이를 조금 넘게 받았지만, 그래도 잔업 철야를 죽어라고 하면 간신히 집에 생활비를 내고 자신의 용돈 정도를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도 2년 6개월밖에 일할 수 없었다. 오래전 제정된 비정규직 고슴도치법에 따라 회사에서는 비정규직고슴도치를 3년 밖에 쓸 수 없었다. 아니 3년 동안 맘대로 부려먹고 잘라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오빠는 늘 자신의 목숨은 3년짜리라고 한다. 그 이상의 내일은 없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다섯 가족 모두가 실업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밖은 뜨거운 여름이고, 집은 좁고, 냉방기라곤 선풍기 한 대가 고작이었다. 소비라는 것을 잊어먹은 지는 벌써 오래였다. 우리에겐 생존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잖아도 우린 고슴도치 콤플렉스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족속이었다. 서로를 사랑해 다가가려 할수록 우린 왠지 서로를 찌르게 되어 있는 이상한 운명을 타고난 족속이었다. 껴안으려 할수록 우리 몸엔 서로 상채기만 남았다. 그런 우리가 조그만 둥우리 속에서 서로 부대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지옥이었다. 모두 함께 제초제를 먹고 자살하거나, 어느 누가 홧김에 도시가스 배관을 열어두고 라이터불을 켜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큰오빠와 아빠고슴도치는 시시때때로 부딪쳤고, 그럴 때마다 모두가 으르렁거려야 했다. 엄마고슴도치는 늘 눈물바람이었고, 작은오빠 눈에는 때때로 야성의 때에나 볼 수 있었을 인광이 퍼렇게 서렸다.

    시원한 목욕이라도 원없이 할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우리 고슴도치 한 마리가 벌어올 수 있는 한달 먹이분의 1/3은 족히 될 물값은 우리에게 살인적인 것이었다. 물까지 팔아먹어버린 더러운 인간들이라고 욕을 하며, 엄마고슴도치는 늘 목욕한 물들을 모아 두었다가 변기물을 내릴 때 썼다. 밀집된 다세대 촌이라 햇빛이 들지 않아 낮에도 전등을 켜야 했지만 전기료 영수증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라 가끔 책을 볼 때면 촛불을 켜야 했다. 우리 다세대에서도 전기료를 내지 못해 단전이 되고 차압딱지가 붙은 둥우리가 벌써 여러 집이었다. 끝내 쫓겨난 그 고슴도치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예전엔 아빠고슴도치 한 명만 벌어서도 생활을 하고, 우리 4형제 고슴도치들을 키우고 공부도 시켜줄 수 있었다지만 벌써 옛날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그나마 운이 좋은 20%의 정규직 짐승들을 제외한 모든 고슴도치들과 짐승족들은 비정규직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통일되어 버렸다. 그것은 내일이 없는 삶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이란 말을 이제 쓰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족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다. 우리 집의 경우도 다섯 고슴도치가 쉬지 않고 벌어야 비로서 우리가 살 이 둥우리 하나를 지킬 수 있었다. 다섯 비정규직이 벌어 온 먹이를 다 합치면 간신히 최소한의 식료품과 각종 공공요금을 낼 돈이 되었다. 개인통신기였던 핸드폰도 모두 없앤 지 오래고, 꿈의 세계라는 인터넷 온라인 선을 끊은 지도 벌써 오래 되었다. 그런 건 인간세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런 사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새끼들을 낳아 기르고 키운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 되어 버렸다.

    가족 실업 상태를 견디다 못한 아빠고슴도치와 작은오빠고슴도치는 날일을 알아본다고 새벽 4시면 도시락을 싸들고 나갔지만 둘 다 들어올 때면 빈 도시락 뿐이었다. 일거리가 많지 않았고, 특히나 외국에서 수입해 온 더 값싼 이주고슴도치들이 힘든 일에 몰리면서 기술없는 작은오빠고슴도치나, 나이 많이 먹은 아빠고슴도치 같은 경우 하루 먹이를 구할 곳도 잡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제일 심각한 것은 큰오빠고슴도치였다. 그는 고슴도치대학도 다녔고, 정규직으로도 일을 해보았다는 자부심이 있어 아무 일이나 하질 못했다. 다시 비정규직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했다. 정규직에서 잘리고 이혼까지 당하고 난 후 더더욱 심해졌다. 그는 정말 예전 우리 선조 고슴도치들처럼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나가질 않으려고 했다. 햇빛이 싫다고 했다. 머리도 감지 않았고, 심지어 이빨도 닦지 않은 그에게서는 오수 냄새가 나기도 했다.

    그나마 지금처럼 모두가 비정규직일망정 먹이를 찾아 일을 나갈 수 있다는 것은 그래서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조금은 편하게 잠잘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한 일이다. 내가 오후 5시부터 나가 새벽 12시에 들어올 동안 3교대를 다니는 큰오빠고슴도치와 작은오빠고슴도치는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다. 그들이 밤 11시에 교대근무를 들어가면 퇴근한 나 역시 편안히 쉴 수가 있다. 내가 오전에 학원엘 가고 나면 경비일을 마치고 아침 10시에 들어온 아빠 고슴도치 역시 편하게 한잠 잘 수 있다. 오후 3시경 돌아온 두 오빠가 잘 동안 늦으막이 일어난 아빠고슴도치는 밥을 지어 놓고 TV를 본다. 3일에 한번씩 엄마고슴도치가 돌아오기는 하지만 엄마고슴도치는 밀렸던 일을 하느라 거의 잠잘 틈이 없이 일만 하다 금방 간다. 병원에서 많이 잤다고 한다. 그가 왔다 가면 그나마 3일 먹을 반찬이 생겼다.

    그런 엄마를 보면 시집 갈 마음도 싹 없어진다.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기도 바쁜데 또 어떤 비정규직을 만나 살면서 그 뒤치닥꺼리까지 해야 한다는 게 엄두에 안 난다. 암컷고슴도치들에게 결혼은 죽음이다. 일도 해야지, 아이도 키워야지, 밖에서 늘 상처받고 돌아와 가시돋힌 수컷고슴도치 뒷시중 들어주어야지, 집안일 해야지. 암컷고슴도치들은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치이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수컷고슴도치들이 도와주는 것도 아니다. 가끔 나의 생식기 쪽을 침을 흘리며 바라보는 수컷 고슴도치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럴 때면 차라리 나의 생식기를 떼어내 버리고 싶다. 생식을 미끼로 내가 더 착취받기는 싫다.

    어쩌다보니 나는 성조차 잃어버린 일벌레고슴도치가 되어 있다. 사랑 이런 건 정규직고슴도치들이나 저 얼굴 희멀건 인간들이나 하는 삶의 사치다. 우리에겐 생존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아마 우리 다섯 비정규직 고슴도치들의 가족사는 우리대에서 끊길 지도 모른다. 이미 결혼에 실패한 큰오빠고슴도치와 3교대 교대근무에도 모자라 잔업 철야 특근까지, 한달에 100만원을 벌기 위해 연장근무 120시간을 해대는 작은오빠고슴도치에게 시집 올 암컷이 어디 있겠는가. 더더욱 그에게 생식능력과 번식능력이 남아 있으리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가끔 가족들이 우연히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오붓하게 되면 옛날 고슴도치 시절들을 그리워해 본다. 자연의 품이 있었고, 힘써 일하면 조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생활. 가슴이 떨리는 교미도 해볼 수 있었고, 새끼들을 키우며 미래를 생각해 볼 수도 있었던 생활. 봄여름가을 힘써 일하곤 겨울이면 달콤한 동면에도 들 수 있었던 생활.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든 삶의 여유를 빼앗겨버린 우리 고슴도치 가족사.
    그럴 때마다 아빠고슴도치는 조심스레 예전 그때를 얘기한다.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 우리가 사는 이 땅을 통째로 먹어 삼키려할 때, 우리 모두를 비정규고슴도치로 만들겠다고 할 때, 우리 짐승족들이 조금만 더 단결해서 싸웠더라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한다. 그때도 이미 우린 사육당하고 있었지만 이만큼은 아니었었다고 한탄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나는 아직 어린 고슴도치라 그런지 잘 모르겠다. 그것은 정규적으로 노예처럼 일하며 먹이를 조금 얻어먹을 수 있는 일자리일까. 짐승이라도 최소한은 가지고 있었다는 생식과 번식능력일까. 우리도 네 다리로 비굴하게 삶의 밑바닥을 기지 않고 저 사람들처럼 두 다리로 직립할 수 있다는 꿈일까. 퇴화되어버린 이 분노의 가시일까. 욕심없이 봄여름가을 힘써 일하고 겨울엔 안락한 동면을 즐길 수 있었던 자율의 삶일까.
    잘 모르겠지만 가끔 내 온 몸의 가시가 곤두서는 것을 느낀다. 관리자고슴도치가 부당하게 나의 성을 농락하려 할 때, 일자리를 잃고 돌아온 아빠고슴도치와 엄마고슴도치와 오빠고슴도치들이 서러워 울 때, 잘난 삶들만 보여주는 TV를 보며, 우리의 선량이라며 전혀 우리와는 다른 옷차림을 하고 거들먹거리는 저 인간족들 보며 나는 왠지 내 온 몸의 가시가 불화살처럼 일어서는 것을 느낀다.

    나는 아직 어려서인지 사회화가 덜 된 것 같다고 그 관리직고슴도치가 말했다. 그래서 더 먹음직스럽게 보인다나, 뭐라나. 하지만 나도 내가 왠지 이 사회와는 아직 어울리지 않음을 느낀다. 나는 아직도 저 대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듯하다. 모성을 가질 수 있고, 내 힘으로 먹이를 만들고, 저장하고, 나누어주면서도 이웃 짐승들과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을 듯하다. 모두가 비정규직인 정글이 아니라 모두가 정규적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누릴 수 있는 삶을 꿈꿀 수 있다.

    그런 나에게 이 세계는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일기를 쓴다. 옛날 어떤 고슴도치도 이렇게 일기를 썼다고 한다. 그는 그러다 자신의 몸을 등신불로 만들며 죽어 갔다는데 차마 나는 그럴 용기까지는 없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일기를 쓰다 보면 그 아름다웠다는 청년고슴도치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 그도 역시 지금의 나처럼 우리 짐승 고슴도치들이 어떻게 하면 나쁜 인간족들을 물리치고 우리 모두가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까를 꿈꾸었을 듯하다. 지금은 이렇게 시적으로 쓰지만, 나중엔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겠다. 고슴도치족들의 단결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왜 저토록 많은 먹이와 부가 사회에 쌓여 있는데 우리 모두는 비정규직 고슴도치로 살 수밖에 없는지를. 왜 우리는 우리 서로만을 가시로 찌르며 사는 지를.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데, 굴리는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글쓴이 소개] 송경동 / 시인. <일과시> 동인.
    시집으로 『꿀잠』(2006, 삶이 보이는 창)을 펴냈다. 진보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 『진보평론』 편집위원, 그리고 민주노동당 문화예술위원과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 등으로 일하고 있다. 말하자면 비정규직이다.

    [그림 그린 이] 박양준


    [특별기획] "비정규노동 실태 2006 - 불안정 노동의 시대" 순서

    [1회] 연재를 시작하며 - 불안정 노동의 시대를 넘어 평등 세상을 향해
    [2회] 비정규노동 확산의 배경 - 자본의 위기, 노동의 위기
    [3회]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하기
    [4회] 정규직과 비정규직 - 같은 일, 다른 노동자
    [5회]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의 사각지대
    [6회] 여성과 비정규노동 - 여성이니까 당연하다?
    [7회] <가상 시나리오>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기
    [8회] <르포-밀착 취재>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주일 / 영상물 병행
    [9회] 비정규노동과 노동강도, 노동안전
    [10회] 비정규노동과 경제 -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어야 경제가 산다?
    [11회] 비정규직 노동운동 진단과 방향
    [12회] <특별좌담> 한국 사회와 비정규노동 / 인터넷 영상생중계


    * 기획취재팀(이용근, 이원배, 신현훈, 조대희, 김수목)
    * 이 기획취재는 한국언론재단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2006년10월27일 18: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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