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가재는 게 편이란 말이 맞는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힘도 없고 의지도 없음을 나타내는 것인가? 서울지방노동청(청장 엄현택, 이하 서울노동청)이 KTX 승무원 불법파견 조사 결과를 ‘합법파견’으로 결론 내면서 KTX승무원들이 정부기관 노동부에 가졌던 일말의 기대도 깨뜨려 버렸다.
서울노동청 엄현택 총장은 9월 29일 오전 10시 과천 정부청사에서 회견을 갖고 KTX승무업무가 “철도공사와 철도유통간 체결, 시행 중인 승객 서비스에 관한 위탁계약은 그 본질적 부분이 도급 계약으로서 한계를 일탈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공사 및 유통이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을 위반하였다고 볼 수 없다”며 합법 파견 결정을 내렸다.
이런 결정은 그간 변호사, 노무사, 교수 등 전문가들 대부분의 일치된 견해인 ‘불법파견’에 반하는 결정으로서, 그간 꾸준히 제기되어 온 서울노동청의 정치적인 결정 혹은 외압 의혹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서울지방노동청 엄현택 청장이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결과는 일부 불법 사실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합법'적이라는 결론으로 철도공사의 손을 들어주기 위한 꿰맞추기란 비난이 일고 있다.
엄청장은 ‘합법 파견’의 근거로 “철도유통이 노무관리상 독립성과 경영상 독립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측면도 상당수 있다”면서 △유통이 공사의 ‘열차운용계획표’에 따라 승무원 교번표를 편성하고 이 교번표 순서에 의거 여승무원을 배치하고 있는 점 △유통이 자체 승무본부에서 여승무원의 출무, 종무 신고를 받고 승무적합성 검사를 하고 있는 점 △공사가 여승무원 업무수행상태를 확인하고 작성한 ‘시정요구서’를 통보하면 유통이 여승무원에게 출무 정지, 경고 등 징계조치 시행 △열차팀장과 여승무원 업무는 연계되어 있기는 하나 열차팀장과 여승무원의 주된 업무는 구분 가능 △공사에게서 받는 위탁수수료를 유통이 자체 임금지급기준을 마련해 지급하고, 공사에게서 받는 인센티브를 유통이 자체 평가 기준에 따라 차등 지급 △유통이 4대 보험의 가입 주체이고, 노사협의회 개최 등 노동관계법 상의 사업주로서 의무 이행한 점을 들었다.
엄청장은 열차팀장과 여승무원 업무 구분과 관련해 “일본도 승무서비스 업무를 외주화하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외국의 사레를 들었는데, 엄청장은 “그거와 관련해서 잘 모른다. 일본의 경우는 어떻게 자료가 입수가 되서…. 어디서 자료를 얻었다”고 얼버무렸다.
일부 위법 사례도 드러났지만…
그러나 엄청장은 “인사노무관리상의 독립성과 경영상의 독립성이 일부 침해된 측면이 있다”며 일부 불법 사실을 들었다. △공사가 KTX여승무원의 업무수행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 △교육시 공사가 제작한 교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점 △도급 초기 여승무원의 출,종무 신고를 공사에서 시행 △공사 열차팀장의 업무확인 과정이 업무지시로 받아들여지기 쉽고, 일부 직원에 의한 업무지시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 △공사의 주식소유 비율이 높고, 유통 임원이 초기에는 전원 공사 출신 △공사에서 손망실된 기자재에 대해 여승무원에게 직접 변상 조치한 점은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부’ 불법 사실이 있음에도 “100% 완벽한 적법 도급이라고 판단하지는 않는다”면서 “도급계약의 본질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긴 어렵겠다”며 철도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일부 불법 사실이 있음에도 ‘종합적이고’ 전반적으로 불법은 아니란 것으로 논란의 소지를 남겨 철도공사 손들어주기 아니냐는 의혹은 여전히 남는다.
이어 엄청장은 불법사실에 대해서는 시정이나 개선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조사 방대했고 철도공사 공문 받은 적 없다"
외압 의혹과 관련해 늦어진 건 조사 분량이 방대했고 법률 자문단에 KTX승무원지지 변호사가 있어 공정성 문제로 늦어졌다. 철도공사의 공문은 받은 적이 없으며 보고서 작성자도 조사담당관 그대로 변경되지 않았다며 기존 해명을 되풀이 했다.
이 결과에 대해 한 변호사는 “한 마디로 말이 안된다”며 강하게 비판하면서 “조사는 제대로 해놓고 결과는 엉뚱하다. 본질적인 것은 업무지시나 지휘감독인데, 유통이 상주 안하고 열차팀장이 지시, 감독하는걸 (서울노동청이) 인정하면서도 그렇게 안했다. 이 정도면 불법파견 판단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결정으로 대한민국은 가진 자 편이란 걸 새삼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KTX승무원의 몸에 둘린 게 밧줄일까? 9.28.여의도 집회에서.
한편,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도 성명을 내고 “KTX여승무원의 외주 위탁은 명백한 불법파견이다. KTX 열차승무지부에서 제출한 100여 가지에 달하는 증빙자료를 일일이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철도공사는 KTX여승무원을 채용, 교육하고 임금을 결정하며 직접 업무지시하고 평가하는 등 인사노무관리의 전반을 담당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실적 업무관계를 외면한 채 노동부는 철도공사가 불법파견 혐의를 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에 손을 들어주었다”고 노동부의 결정을 비판했다.
이어 “다시 싸움을 준비하는 이들의 결의에 지지와 연대의 애정을 보내며 우리는 노동부에 경고한다. 무엇이 진정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인지, 누가 과연 한계를 일탈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반드시 진상규명 하겠다”
이날 노동부의 발표에 대해 KTX승무지부는 “진술한 내용이 많이 빠졌다. 노동부 관련 규정에 의하면 하나라도 걸리면 불법파견에 해당하는 것인데 노동부 스스로 규정을 어겼다. 발표 결과를 하나하나 지적하겠다”고 밝히면서 “(노동부 발표는) 로비로밖에 볼 수 없다. 실망했지만 그래도 계속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철도공사의 KTX관광레저 재입사 운운에 대해서도 “이철 사장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겠다. 꼭 진상규명을 하겠다”며 철도공사와 서울노동청에 대해 강한 불신을 제기했다.
한편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소송은 준비하고 있지 않다. 검토는 하겠으나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KTX승무지부는 이철 사장과 이상수 노동부장관이 증인으로 나오는 10월 12일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와 반드시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06년09월29일 17:36:19
1. 안타깝습니다.
어진지부 10/01 12:43
일하고자하는 노동의 형태는 동일할 것인데, 계약관계가 다르다하여 노동의 댓가를 차등화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세상논리인 듯 합니다.
안타깝고 답답하네요.
사용자 편의주의가 사라지고 노동의 댓가를 동일하게 평가 받는 그날까지 투쟁의 깃발은 펄럭이겠지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