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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에 빠진 자본의 탈출구,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2회] 비정규노동 확산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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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취재팀 cast@cast.or.kr
    “노동조합 무력화가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1998년 8월 14일부터 무기한 휴업에 들어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8월 18일, 경찰병력 95개 중대 1만 2천여명이 전국에서 울산으로 몰려들었다. ‘태화강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경찰만이 아니다. 경찰이 둘러싼 현대자동차 생산현장에는 노동조합원과 가족들 4천여명도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취재진 수 백 명까지 몰려들어 전 국민의 귀와 눈이 쏠린 울산에 18일 저녁 급히 나타난 사람들이 있다.

    국민회의 부총재 노무현 의원, 조성준 의원, 정세균 의원, 조한천 의원, 김명원 노사쟁의지원특위간사, 이목희 노사정위원회 실무간사, 이용범 노사정위원회 대변인. 지금은 대통령이 된 노무현 그 때 의원을 단장으로 한 국민회의 중재단 7명도 8월 18일 울산에 내려왔다. 이들은 8월 23일 울산을 떠날 때까지 노・사 양쪽을 오가며 교섭 상황을 주도했다. 이를 두고 하루빨리 경찰병력을 투입하라고 떼를 쓰던 자본 측에서는, 당사자 자율 협상을 원칙으로 하는 노사 문제에 정당이 나선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언론에서는 협상주체가 노・사・정이 아니라 노・사・당으로 바뀌었다며 비아냥거렸다.

    노동부장관과 노사정위원장이 울산에 내려와 있었음에도 특별히 중재단을 만들어서 울산까지 내려 온 이들이 그 때 어떤 역할을 했을까? 아니 중재단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8월 21일 중재단장이던 노무현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 “중재단은 처음 내려올 때 노조를 설득해 정리해고를 수용하도록 만하면 사태는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꼼짝 않던 노조를 설득해 정리해고를 수용하게 한 것만으로도 중재단의 당초 목적은 달성한 것이다. 민주노총 핵심사업장 노조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서울신문 8월 22일자 3면 기사). 그들 말마따나 노동조합이 조합원 일부를 정리해고 하는 선에서 받아들일 뜻을 내비치자마자, 이를 언론에 공개하고 협상이 끝나지도 않은 23일 서둘러서 울산을 떠났다. 정부와 자본진영을 대신해 울산 현지에서 ‘태화강 작전’을 지휘한 것이다.

    98년 현대자동차 파업 투쟁은 노동진영에서나 정부나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앞으로 있을 대대적인 격돌을 가름하는 분수령이었다. 민주노총은 98년 대의원대회를 통해 정리해고 협약을 부결시키고 정리해고 저지 투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의 폭력과 탄압 속에 정리해고 저지투쟁은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투쟁 전선은 무너졌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외롭게 파업투쟁을 이어갔다. 김대중 정권은 앞서 살펴 본대로 고립된 노동조합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도록 모든 조직을 가동하여 압력을 행사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에 대한 정리해고 강행으로 자본과 정부는 정리해고 선례를 남겼다. 이는 노조 유연화를 위한 본격적인 공세였다. 98년 당시 정리해고 합의 후 모습.
    현대자동차노동조합 김광식 전 위원장은 “노조무력화가 가장 큰 목표였다. 노조에 대해서 주도권을 갖고, 그를 통해서 노동 유연화를 확보해서 언제라도 정리해고하고 전환배치하고, 언제라도 회사 양식에 맞게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확보하겠다는 의도에서 현대자동차노조를 표적으로 삼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리해고 합의라는 치명적인 선례를 남기면서, 노조원들이 노조도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인식과 함께 상시적인 고용불안 압박을 느끼게 됐다”고 덧붙인다. 98년 한 해에만 정리해고 권고사직 등 방식으로 노동자 1만 명이 현대자동차를 떠났다.

    자본의 재생산위기를 노동자에 대한 반격의 기회로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던 달러가 갑자기 빠져나가면서 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국가부도사태’에 빠진 나라의 권력을 물려받은 김대중 정권은, 외국자본을 우리나라에 유치하여 달러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었다. 외국자본 유치 정책을 유일한 탈출구로 믿었던 김대중 정권은 국제적인 투기꾼인 조지 소로스를 안방에 불러들여 자문을 받는 등 국제투기자본 손아귀에 놀아나 우리나라 기업을 무한정 외국 자본에 팔아 넘겼다. 국제투기자본이 요구하는 대로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규제들을 없애고, 상품과 금융, 서비스 산업 등 전 영역에서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했고, 국영기업과 공기업을 외국투기자본과 재벌에 넘겼다.

    김대중 정권은 이 같은 처방이 국가부도사태를 벗어나는 길이라고 강조했지만 사실은 재생산위기에 빠진 자본이 모든 부담을 노동자, 민중에 떠넘기며 탈출하는 방식일 뿐이다. 민주노총 허영구 부위원장은 ‘투기자본과 비정규직 양산의 문제점’이란 글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공황적 성격은……빠른 속도로 주기적인 반복을 거듭한다. 자본주의체제 위기증폭에 따라 주기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데 노동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은 경제불황이나 경제위기가 낳은 자연스런 결과가 아니라, 자본이 자신의 재생산 위기를 노동자들에 대한 반격의 기회로 삼는 수단”이라고 지적한다.

    김대중 정권이 이른바 구조조정 모범사례로 치켜세우며 자랑하던 한라재벌 사례가 전형적이다. 한라재벌 정몽원 전 회장은 계열사인 한라시멘트, 만도기계, 한라건설 자금 2조1천억 원을 빼돌려 한라중공업에 부당지원해 계열사 부도를 불러왔다. 미국 투자회사인 로스차일드는 부도난 계열사를 로스차일드가 만든 가공회사로 넘기고->로스차일드는 국내외에서 자금을 조달해 채권단으로부터 헐값에 부채를 인수한 다음->부채가 줄어들어 재무구조가 깨끗해진 계열사들을 다시 국내외 기업이나 투자회사에 팔았다.

    이 과정에서 외자유치를 조건으로 한라시멘트가 국내 금융기관에 갚아야 할 부채 1조880억원 가운데 6363억 원을 탕감 받았는데, 채권단의 부채탕감으로 깨끗해진 회사 지분 30%를 정몽원 전 회장이 챙겼다. 김대중 정권은 일방적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만도기계 파업현장에 경찰병력을 투입해 가면서 이를 도왔다. 경찰병력이 짓밟은 파업현장에서 만도기계 노동자 2천4백82명이 연행되었으며 282명은 불구속 입건됐고, 노동조합 간부 등 30여명이 구속되었다. 정몽원 재벌 회장이 떼먹은 돈은, 공적자금으로 메워진 채권단 손실이고, 결국 한라재벌 부실을 우리국민이 사회적 부담으로 떠안은 것이다.

    신자본(유)주의 공세 앞에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노동자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경제성장 모형인 케인즈주의는 1970년대 금태환 정지, 고정환율제 파산을 거쳐 유가파동과 공황으로 설자리를 잃었다. 달러 - 월스트리트 체제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온 것이라고 허영구 부위원장은 말한다. “금융자본론을 쓴 R. 힐퍼딩은 자본주의 공황 형태는 금융공황이라고 했다. 달러 - 월스트리트 체제 아래서 이른바 국제금융기구(IMF)식 구조조정은 금융자본 이해와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98년 이후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하면서 경제 자주권을 잃고 말았다”. 선진금융기법과 투명경영을 내세워 형식적으로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노동을 주요 공격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금융 쪽은 국제투기자본에 의한 피해가 집중된 산업이다. 98년 이후 투기자본이 금융기관을 사들였다가 되팔면서 금융산업 노동자들 6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제일은행 매각 때 명예퇴직을 하며 일자리를 떠나는 노동자들 사연을 담은 ‘눈물의 비디오’는 국제투기자본과 신자본(유)주의 정부가 노동자에게 어떻게 고통을 전가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공적자금 17조 8천억 원을 쏟아 부은 제일은행을 5000억 원에 사들인 뉴브릿지캐피탈은 영국계 은행 스탠다드차타드에 1조 6500억 원에 되팔면서 1조 1500억 원을 남겼다. 외환은행을 1조 4000억 원에 산 미국텍사스에 본사를 둔 투기자본 론스타는 2004년 10월부터 대규모 인력감축을 단행하며 노동자를 내쫒기 시작했다. 명예퇴직의 형태로 외환은행 노동자 473명이 직장을 떠났다. 말이 명예퇴직이지 “경영상황도 흑자 상황이었고 과잉인력도 없는 상태여서 사실상 (사측이) 대상자를 지명한 강제퇴직”이었다고 외환은행 노동조합 김보헌 홍보전문위원은 말한다. 론스타가 되팔 생각으로 노동자를 감원했다는 것이다.

    투기 자본의 기업 사냥에 노동자들이 대량 실직하고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국내 시장주의 관료들은 책임지지 않는다.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빗속에서 매각 저지 투쟁을 하고 있다. <출처=외환은행 노동조합>

    473명 정리해고 이후 외환은행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해고 압박과 하루 13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외환은행은 점차 비정규직을 확대해 지금은 30%정도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또 2년 내지 3년 계약도 점차 줄어 1년 내지 6개월 단기 계약 노동자가 늘고 있다. 정규직도 실적으로 바로 연결되는 부서에 집중 배치돼 실적에 따른 고용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정리해고가 끝난 2003년 6월 현재 금융노조가 포괄하는 사업장 노동자 13만 7천명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는 4만 1천명이다.

    구미에 있는 오리온전기는 국제투기자본과 정부 관료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오리온전기는 1999년 대우사태로 워크아웃에 들어가 2003년 5월에 최종부도 처리됐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오리온전기에 공적자금만 3967억 원이 투입됐다. 7000천명에 가깝던 노동자들은 계속된 정리해고로 2005년 말 130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채권단은 미국계 사모펀드 매틀린패터슨(아래 MP)을 최종 인수자로 선정하여 자산가치 1200억 원이 넘던 오리온전기는 600억 원에 팔아 넘겼다.

    인수과정에서 노동자들 고용보장이 중요한 조건이 되자 MP는 3년간 고용을 보장하고 합병, 매각 등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오리온전기를 인수했다. 협상을 옆에서 부추기며 보증까지 선 국무조정실 담당자와 외통부경제통상대사는 정부가 주는 상도 받았지만 끝까지 책임을 지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오리온전기 경영과 노동자 고용보장에 관심이 없던 MP는 곧 바로 브라운관 사업부문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가공회사 ‘오션링크’에 팔았다. 그리고 ‘오션링크’는 오리온전기 청산을 결정했다. 3년간 고용보장 합의를 믿었던 1300명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버렸고, 260여개의 하청(협력) 업체에서 일하던 900여명의 노동자들까지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