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민주노동당은 남한 자본가 계급과 제국주의자들이 끌고 있는 북한 자본주의 반혁명의 수레를 노동계급의 이름으로 열심히 밀고 있다.
(2) 인민전선: 재앙을 불러오는 정책
"현재 존재하는 문제들 중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민전선이다. 좌파 중도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전술이나 심지어는 기술적인 책략의 문제로 제기하려고 한다. 그리고 인민전선의 그늘 속에서 자기 물건을 팔아먹으려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인민전선은 이 시대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 전략의 핵심 문제이다. 또한 인민전선은 볼셰비즘과 멘셰비즘의 차이점을 가장 잘 가려낼 수 있는 시금석이다. 우리는 1917년 2월 혁명이 인민전선의 가장 극명한 역사적 사례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2월부터 10월까지 공산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원들은 입헌민주당의 부르주아들의 가장 가까운 동맹이었고, 그들과 더불어 일련의 연합정부를 구성하였다. 인민전선의 지붕 아래 노동자 농민 병사 위원회를 포괄하는 모든 인민이 함께 있었다. 볼셰비키도 분명히 그들 위원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인민전선과는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았다. 볼셰비키의 요구는 ‘인민전선을 끝장내자, 부르주아와 단절하자, 진정한 노동자 농민의 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이었다."--트로츠키,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과 인민전선’, 1936년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가 계급 지배의 사회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리하여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 기본적으로 그 계급적 분리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노동계급의 정당은 마땅히 부르주아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정치적 독자성을 견지해야 한다. 자본가계급과 조직적 정치적 단절이라는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인민전선은 노동계급을 패배로 이끄는 반동적 정책이다.
일상적 시기에, 자본주의에 회유된 노동계급의 상층은 부르주아 조직과의 강령적 연합인 인민전선을 통해 자신의 친자본주의적 개량적 사민주의적 성격을 은폐하고 그러한 정책과 행동에 대한 적절한 보호막을 얻게 된다. 그로 인해 노동 대중이 개량주의 지도부의 본질을 깨닫는 시간을 지연시켜, 진정한 혁명 정당의 출현과 발전을 가로막게 된다.
혁명적 시기에, 인민전선의 정치적 재앙은 극대화된다. 혁명적 위기 상황에서 자본가 계급은 그 인민전선이라는 벙커 속에서 자본주의 국가기구와 소유관계의 철폐라는 재앙적 결과를 모면할 것이다. 그리고 자본가 계급은 그 인민전선으로 지지부진해진 혁명에 대해 실망한 대중들이 등을 돌리는 시기를 절치부심하며 기다릴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덧 그 역관계가 변화되어 부르주아에게 반격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인민전선은 노동계급과 그 지도부를 궤멸시키는 강력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 전개는 1917년 2월 혁명 이후 볼셰비키 일부와 멘셰비키, 사회혁명당의 계급협조주의 노선으로 인하여 러시아에서 진행될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볼셰비키가 존재하지 않았던 1925-27년의 중국, 1930년대의 스페인 그리고 1972-3년의 칠레에서는 현실이 되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절멸의 공포에 사로잡혔던 부르주아 계급은, 인민전선의 재앙이 현실화된 각각의 사례 모두에서 참혹한 복수극을 펼쳤다. 부르주아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노동계급의 개량주의와 중도주의 부위와 달리, 그들은 조금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노동계급의 선진부위와 지도부를 가차없이 학살했다. 중국공산당은 도시와 노동자들을 등지고 중국의 변방으로 유배됐다 (지금은 이것이 ‘대장정’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고 스페인과 칠레에서는 만삭이던 혁명이 유산되었다. 고양되었던 혁명 운동은 한 세대 이상을 후퇴하여, 초토화된 땅에서 싹이 새로 움트기를 기다려야 했다.
공동전선과 인민전선
물론 혁명조직이, 구속된 투사를 방어하거나 정부의 특정한 공격에 맞서는 등의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목표를 위해, 개량주의나 중도주의 조직들과 함께 싸울 수 있다. 이것은 여러 다른 조직들이 ‘각자의 깃발 아래, 같이 투쟁하는’ 노동계급의 공동전선이다. 공동전선에 함께 한다고 해서, 혁명 조직이 중도주의 또는 개량주의 강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 반대로, 공동 투쟁은 그들의 한계를 폭로하고 영향력을 차단하여, 더 많은 노동자들이 혁명 진영으로 끌어들일 기회를 부여한다.
선거 시기 대중적인 개량 정당에게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것은 이러한 공동전선 전술 가운데 하나이다. 이 공동투쟁은 그들이 집권 후에 노동계급을 배신할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개량주의자들의 파산한 정치를 폭로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공동전선은 자본가계급에 대한 투쟁의 수위를 높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개량주의자들이 선호하는 계급협조 정책 즉, 인민전선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인민전선은 '집권을 위한, 부르주아들과의, 장기간의' 연대를 말한다. 이 정책은 자본가 우파에 대항하는 노동계급의 무장해제를 통해 노동계급에게 재앙을 불러온다.
인민전선은 계급투쟁을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민주노동당과 같은 개량주의 노동자당이 인민전선에 합류하게 되면, 인민전선에 함께하는 부르주아 파트너들은 노동자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구실로 쓰이게 될 것이다. 즉, 만약 노동자들이 급진화 될 경우, 개량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 악랄한 부르주아 극우파들과 맞서기 위해선, 온순한(?) 부르주아들과의 동맹이 필요하다. 여러분들이 지나치게 급진적인 요구를 내걸면 그들이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1970년 칠레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위 극우파를 대항한 전선도 인민전선으로 인해 약화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혁명가들은, 개량주의자들이 부르주아와 단절하여 정치적 독립을 지키지 않고, 정권을 장악하거나 지키기 위해 자유주의 부르주아와 연대할 경우, 비판적인 지지마저 결코 할 수 없는 것이다. 부르주아와 단절하여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는 것, 이것은 비판적 지지를 보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그렇다고 해서 혁명조직이나 노동계급이 '보다 큰 위험에 맞서서 부르주아 세력과의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연대'마저 회피한다는 것은 아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코르닐로프 반란에 맞서 볼셰비키가 케렌스키의 인민전선 정부를 군사적으로 방어했던 것이 그 사례이다. 코르닐로프 반란 저지를 통해서 노동계급은 자신의 힘을 보존 강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몇 주 후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는 도약대가 되었다. 케렌스키가 러시아 노동계급과 농민의 이익을 수호할 의지가 없음을 볼셰비키는 폭로했다. 그들은 케렌스키에게 ‘인민전선에 함께 하고 있는 자본가 장관들을 쫓아내라, 그러면 너희를 지지하겠다.’고 요구했다. 만약 케렌스키와 다른 개량주의 지도부들이 그렇게 하여 이중권력 상태를 종식하고, 노동자 농민 병사 소비에트의 이름으로 집권했다면, 이것은 '대단히 특별한 형태의, 그리고 가장 최고 수준에서 결성된 공동전선'의 사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노동계급의 급진성을 더 무서워하는 케렌스키를 중심으로 하는 개량주의자들은, 부르주아 파트너들과 갈라설 뜻이 없었다. 볼셰비키는 바로 이점을 제대로 폭로해 낸 것이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 사수를 다른 피억압 인민의 아픔에 무심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노동계급의 혁명정당은 레닌의 말처럼 ‘인민의 호민관’이다. 자본주의로 인해 고통 받는 모든 피억압 인민 즉, 농민, 빈민, 여성, 학생, 성소수자 또는 종교적 피억압자 등의 아픔에 노동계급의 혁명정당은 귀를 기울이고, 그 투쟁을 이끌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이 국가보안법 철폐, FTA반대와 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과제를 두고 부르주아와 일시적인 공동행동 즉 공동전선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같은 전선에서 하지만 각자의 깃발 아래’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대단히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공동행동이어야 한다.
한국진보연대와 선거연합: 2007년판 인민전선의 두 가지 판본
민주노동당은 두 가지 형태로 인민전선을 추구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한국진보연대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부르주아와의 선거연합이다.
지난 8월 19일 민주노동당은 민노총, 전국농민연합, 전국빈민연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을 위시하여 종교 단체들 시민 단체들을 포함 30여개의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한국진보연대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진보연대에 가입한 단체들 중, 민노총을 제외한 나머지 단체들은 노동자 계급의 조직이 아니며, 자본가 체제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거부하는 쁘띠 부르주아적 요소가 있거나 쁘띠 부르주아 조직이거나 부르주아 조직들이다. 또한 한국진보연대는 이번 대선에 단일 후보를 내어 정권을 장악할 것을 목표로 하고, 총체적 강령을 가지고 있는 상설적 장기적 투쟁 연대체이다. 이런 점에서 반(反)FTA 공동투쟁 등과는 달리, 한국진보연대는 명백히 부르주아와의 전략적 강령적 연합 즉, 인민전선이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반(反)한나라당 전선’이라는 미명 아래, 은밀히 그리고 공공연히 부르주아 후보와의 선거연합 또는 부르주아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추구하고 있다.
이 두 가지 판본의 인민전선은 민주노동당 내의 다음 두 분파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그들이 왜 인민전선을 향해 나아가는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해 보자.
민주노동당 내의 인민전선 경향: NL 그룹
사실 민주노동당의 인민전선 경향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에서 최대 지분을 점하고 있는 NL 그룹은, 애초에 북한 스탈린주의 정권의 사상적 영향 속에서 자라난 그룹이다. 스탈린은 국유화된 경제 체제에 기생하는 관료집단의 대표였고, 1917년의 러시아혁명을 관료주의 일국사회주의로 후퇴시킨 장본인이다. 혁명이 퇴보한 소련에서 일국사회주의 노선을 바탕으로 자국 방어를 최우선으로 여긴 스탈린 집단은, 혁명적 상황이 펼쳐지는 각 나라에서 부르주아와의 협조주의를 선전하고 그 조직적 귀결인 인민전선을 주도한 뿌리이다. 조선공산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창건된 조선노동당은 해방 후 한반도에서 실현된 스탈린주의 인민전선의 첫 번째 결과물이었다.
이후에도 신식민지 상황과 반제국주의 투쟁을 핑계로, ‘통일전선’이라고 명명된 부르주아와의 연합 전술은 북한 스탈린주의 정권의 일관된 한반도 혁명 정책으로 선전되었다. 그들은 인민전선 속에서 남한의 인민들이 "사상과 이념, 정견과 신앙, 계급과 계층, 재산과 거주지의 차이에 관계없이(한국민족민주전선)" 단결할 것을 요구해 왔다. 선거 시기, 인민전선정책은 남한 자본가 계급의 극우 분파의 당선을 막기 위해 부르주아 좌파를 지지하는 전술로 표현되었다. 부르주아 분파에 대한 소위 비판적 지지 전술은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1987년부터 1992년, 1997년 그리고 심지어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가 존재하던 2002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2007년 대선에서도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예외가 아니다. 남한의 혁명 지휘부를 여러 해 동안 자처해온 한국민족민주전선은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되던 지난 9월 15일, 또 다시 인민전선 정책을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미국과 반(反)통일 보수세력을 등에 업고 이번 대선에서 어떻게 하나 이명박을 당선시켜 권력을 탈취해 보려고 필사적으로 발악하고 있다.…한나라당의 집권야망을 분쇄하자면 반드시 반보수대연합으로 반(反)한나라당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반보수대연합은 올해 대선에서 필승을 가져오기 위한 절박한 요구이다.…기득권만을 주장하거나 당파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현상을 없애고 대연합에서 최대한의 공평성을 도모하는 원칙에서 협력하고 단결해야 한다. 단결하면서 투쟁하는 것은 통일전선의 원칙이다.…각이한 계급계층이 망라되는 만큼 각 당, 각계각파의 이해관계가 반영되고 모두가 접수될 수 있는 강령을 바로 정하는 것은 연합전선의 기치를 마련하는 중요한 문제이다.”--한국민족민주전선, 2007년 9월 5일, ‘반보수대연합은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중요한 사업이다.’
민주노동당 내의 인민전선 경향: 다함께
1992년 대선부터는 NL이 주도하던 인민전선 무대에 IS의 한국 지부인 다함께가 가세했다. IS는 2차 대전 직후와 한국 전쟁 무렵 발생한 매카시즘에 굴복한 토니클리프가 제4인터내셔널에서 탈퇴하여 영국에서 처음 만든 조직이다. 이 IS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 주도의 연합군에 맞서 북한을 방어할 것을 거부하여, 노동계급 편에 서기를 사양한 바 있다. 그 이후에도 IS는 베트남전, 폴란드 자유노조, 이란 회교 혁명, 소련 붕괴 등등의 정치적 사안들마다, 원칙과 진실보다는 그 시기 다수 대중의 움직임을 추종해왔다.
사상적 불량품인 토니 클리프주의를 트로츠키주의로 포장하여 수입한 한국의 IS 역시, 대중추수주의와 국가자본주의론이라는 IS의 역사적 전통에서 한 걸음도 일탈하지 않았고, 그러한 정치적 태도는 대선에서 인민전선적 태도로 표현되어 왔다.
현실 속에서는 반대로 작동하지만, 인민전선은 부르주아 좌파와 연대하여 부르주아 극우파를 포위하겠다는 환상 에 기초한다. 그리고 부르주아 좌파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으로 강령적 수준을 떨어뜨려야만 한다. 이런 이유로, 진실과 원칙이 아니라 다수가 동의 가능한 공통분모 운동을 추구해온 IS는, 인민전선의 유혹에 자꾸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다함께 창립자인 최일붕은 정식 창립을 앞둔 9월, 그 동안 논의에 참여해 온 한국진보연대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참가하지 않는 이유가 인민전선을 체결해서는 안 된다는 계급정치의 원칙 때문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NL파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연대체에 이끌려 갈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고, 더 중요하게는 그들이 선거연합의 중요 대상으로 여겼던 미래구상이, 집권여당이 새로 만든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대거 옮겨가자, 한국진보연대로는 민주노동당을 넘어서는 폭넓은 선거연합을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대신에 그들은 한국진보연대와 별도로 진보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선거연합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들의 선거연합이 “노무현 정권과 범여권의 개혁 실패가 빚어낸 정치 공백을 메꾸”어서 한나라당의 당선을 막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 대상들은 하나같이 민주노동당보다 왼쪽 진영이 아니라 오른쪽 즉, 부르주아 진영들이다.
하지만 2006년 초까지 다함께는 (적어도 김하영은) 인민전선이 계급배신정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2006년 3월 다함께의 운영위원이며 <맞불>의 기자인 김하영은 당시 NL 주도하에 논의되고 있던 단일전선체 즉, 인민전선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올바르게 비판했었다.
단일전선체는 계급연합을 추구하는 추진체로 볼 수 있다.…친미 보수우파의 준동에 대항해 중간계급과 부르주아 일부까지도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 이 주장의 뼈대라고 할 수 있다. 노동계급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많은 사람들은 ‘단결하면 좋은 거 아니냐’는 소박한 심정에서 단일전선체를 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내가 얘기했듯이, 단일전선체 건설 논의로 표현되는 “대동단결” 요구는 실제로는 계급연합 전략, 곧 인민전선(민중전선)이다 .… 민중전선 전략의 또 다른 폐해는 독립적인 노동계급 투쟁을 억제한다는 것이다.…단일전선체론자들은 단일전선체와 민주노동당의 관계를 대중 투쟁과 원내 활동의 관계로 그럴 듯하게 설명하려 들지만, 그들에게 핵심은 민주노동당만으로는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8년 대선에서 모종의 자유주의적 개혁 세력과 연합하는 게 2012년 민주노동당 집권을 위한 징검다리가 될까? 열우당과 민주노동당은 공동운명체다, 노무현 정부가 마무리를 잘 해야 민주노동당에 이롭다는 식의 얘기들은 오히려 민주노동당과 열우당의 경계를 흐림으로써 민주노동당이 선명한 대안으로 호소력을 갖는 것을 방해해 왔다. 오히려 지금은 대중이 모종의 부르주아 개혁 세력(열우당 개혁파든 386이든)의 영향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을 가속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김하영, 2006. 3. 25. ‘단일전선체 계급연합 전략이 갖는 문제점’, 강조는 인용자
하지만 그는 2006년 8월, 바로 그 단일전선체(혹은 상설연대체)를 조건부로 인정하는 입장으로 후퇴한다.
지금 좌파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 실패에 환멸감이 자라면서 노무현 왼쪽에 생겨난 공백을 메워야 할 정치적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논의되는 상설연합체가 계급연합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현 국면에서 그것이 진보진영의 연합체 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동안 나는 상설연합체가 계급연합(인민전선 또는 민중전선) 추진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인민전선 자체가 아니라 인민전선을 위한 프로젝트 라는 것이었다.--김하영, <상설연대체에 대한 입장>, 강조는 인용자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이 비판하던 그 논리로 상설연대체 (곧, 계급연합 또는 인민전선)의 존재를 인정하며, “인민전선은 아니고, 인민전선을 위한 프로젝트”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자신의 후퇴를 치장한다. 그 후 2007년 1월 ‘다함께가 한국진보연대(준)에 불참하는 이유’라는 글에서는, 상설연대체가 견지해야 할 원칙 중 하나로 내걸었던, “계급 연합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실천 속에서 검증해야 하는 것”이므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말로 계급 전선에서의 퇴각을 완료한다.
이렇게 다함께 내에서 인민전선이 노동계급을 패배로 이끄는 반(反)노동계급 전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김하영이, 점점 후퇴하다가 이제는 그 인민전선에 대한 비판을 거두게 된 것은, 민주노동당 내의 NL 그룹만이 아니라, 자신의 지도부들 역시 그러한 부르주아와의 선거 연합에 강력히 이끌리고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함께의 창건자인 최일붕은 거침없었다. 2007년 5월 19일 <맞불> 44호에 ‘진보선거연합의 문제들’이라는 글에서, 부르주아 지식인들과 시민 단체의 혼합물인 통합번영미래구상에 대한 구애를 넘어 “통합번영미래구상은 참가시키려 노력하고 천정배는 배제하려 한다면 그것은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자의적이고 심지어 치졸한 자세로 여겨질 것”이라며 아예 현직 집권당 국회의원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한편, <맞불> 발행인인 김인식은 인민전선의 하나인 부르주아와의 선거연합의 선두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연이어 발표되는 그의 글들엔 노동계급의 원칙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지지율의 분포와 추이 그리고 올리기 위한 책략만을 따지는 부르주아 선거공학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선거연합을 독려하는 그의 여러 글 중 하나인 ‘운동 속에서 선거연합을 건설하기(<맞불> 42호)’에서는 ‘현직 집권당이 아니면 지배계급이 아니다.’라는 희한한 논리를 펼친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대표체와 지배계급의 정치적 대표체 간의 연합은 체제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힘을 갉아먹을 뿐이므로 반자본주의자들은 이런 연합을 반대한다.
그러나 먼저, ‘미래구상’은 열우당이 아니다.
이런 한심한 논리는, 마치 그들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래구상이 대거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들어가 버린 후인 8월엔, 새롭게 등장한 현직 기업인 출신 대선 후보인 문국현에 대한 짝사랑으로 나아갔다. ‘진보대연합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서, 자본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문국현에 대해 일방적으로 선을 긋는 것은 편향이라고, 그는 충고한다.
문국현의 등장을 놓고 두 가지 편향이 존재하는 듯하다 ─ 마냥 추수하거나 차별성을 긋기 위해 폭로와 비판만 하는 것. 민주노동당 내에는 후자가 좀더 지배적인 듯하다.--김인식, 2007년 9월 8일, 맞불 57호
하지만 문국현의 의사가 분명해지자, 그 다음 호에서 그는 줄곧 잊고 있던 계급이란 단어로 실연의 상처를 달랜다.
문국현은 민주노동당이 지난 몇 달 동안 진보 세력들에게 진보대연합을 제안했을 때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문국현의 계급 화해 정책이 빚어낼 모순을 예리하게 파고들어야 한다.--김인식, 2007년 9월 15일, 맞불 58호
"기회주의자들은 항상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민감하다"고 트로츠키는 말했다.이 말은 '원칙으로 대중을 이끌기보다는, 대중적 움직임에 따라 그때그때 원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다함께의 어지러운 방황을 잘 설명해 준다. 계급 전선을 떠나 새 짝을 찾아 헤매는 다함께의 이런 추레한 방황이 어디로 갈지 지켜볼 일이다.
5. 권영길: 자본가 계급에 회유된 노동계급 상층부의 대표
지난 9월 15일 끝난 당내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로 권영길이 선출되었다. 애초부터 권영길은 자본가계급과의 목숨을 건 싸움을 통해 노동계급의 역사적 과제, 나아가 ‘인류 모두가 역사의 무덤에 묻히 (로자룩셈부르크)’는 것을 막으려는 인류적 과제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동계급의 대표가 아니다. 그는 일상적으로 전개되는 노동자 투쟁과 그 정치적 진전을 부력으로 삼아, 부르주아 정치무대에서 자신의 입지를 마련해보고자 하는, 부르주아에 회유된 노동계급 상층부의 대표일 뿐이다.
그는 자신을 자본가 계급에 맞선 노동계급의 대표라기보다는, 자본주의 틀 내에서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정당의 대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정치 모델은 불후의 혁명가들이 아니라, 이미 썩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장된 자들이거나, 노동계급을 패배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 자들이다.
"국민 여러분,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라고 외친 그는 "프랑스의 미테랑처럼 보수정치 갈아엎겠다" "브라질의 룰라처럼 노동자 대통령이 되겠다" "베트남의 호치민처럼 민중의 호민관이 되겠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처럼 미국을 벌벌 떨게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권영길, 2007년 9월 15일, 후보 수락 연설
당선 후 권영길은,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 정당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신과 민주노동당이 지니고 있는 좌익 정당, 반(反)기업정당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17일에는 한국전쟁의 전몰자들이 묻혀 있는 현충원을 찾아서는 ‘화해’를, 20일에는 중소기업협회를 방문해서는 ‘동지적 우애’를 호소했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권영길과 민주노동당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9월 28일 코리아연방공화국 통일 방안을 발표했다. 김대중 시절부터 실시해오던 햇빛 정책과 거의 유사한 이 방안에는 민족 자주권, 민족 공동 번영 등 민족주의적 내용으로 가득 차 있을 뿐, 노동계급과 사회주의적 요소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0월 15일 민주노동당은, 해방 이후부터 정부의 어용노조로 기능해오던 한국노총에 사과 문서를 전달했다. 민주노동당 김선동 사무총장은 한국노총을 방문해 지난해 ‘9.11 로드맵 야합’을 놓고 “한국노총은 노동자의 이름을 버려야 한다.”고 한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의 발언을 공식 사과하고, 이를 민주노동당 공식 문서로 전달했다.
지난 해, 권영길은 두 번의 대통령 선거 도전을 회고하며, 그때의 고충을 이렇게 호소한 바 있다.
“사표심리다. 2002년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더 심했다. 한나라당 후보만은 막아야 한다는 논리다. 우리 운동원들도 그랬지만 후보 자신이 받는 압력은 대단했다. 권영길이 김대중과 노무현의 당선을 가로막는 게 아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엄청난 압박을 느꼈다. 이러다가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면 나는 어떡하지? 선거개표 끝날 때까지 그게 가장 괴로웠다.”--오마이뉴스, 2006년 5월 29일
이 인터뷰에서 권영길은 한편으로는 노동계급보다 자유주의 부르주아의 안부를 더 걱정하며, 다른 한편으로 비판적 지지론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일이 2007년 선거에선 재발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렇게 자꾸 우측으로 이동한 결과. 민주노동당은 개혁적으로 보이는 부르주아 후보에게 점점 지지층을 잃어가고 있다. 아마도 권영길은 계급의 대표라는 사실을 망각한 자신의 원죄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이전보다 더욱 혹독한 사표론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6. 17대 대선과 민주노동당에 대한 IBT의 입장
IBT는 2002년 대선에 즈음하여 민주노동당에 대해 비판적 지지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정치적 판단과 원칙 때문이었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일당은 사민주의 노선으로 크게 오염되어 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내에는 소부르주아 분자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그러나 크게 보았을 때 이 정당은 초보적이고 정치하지 못한 방식으로나마 부르주아 정치 세력에 대한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주창하고 있다. 더욱이 당내에는 지도부의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인민전선 경향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다. 우리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정치적 성격을 폭로하면서 동시에 노동자 투사들이 자신의 눈으로 이 지도부의 반노동계급적 성격을 직접 볼 기회를 촉진시켜야 한다. 이들이 권영길의 진정한 정치적 실체를 경험으로 파악하는 시간이 빠를수록 이들의 혁명적 의식은 그만큼 빨리 진전할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촉진시켜야 한다. 이 임무는 현 국면에서 권영길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통해 가장 잘 달성될 수 있다.
물론 부르주아 정치과정은 부르주아 계급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작동한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개입할 여지는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존재하는 여지를 활용하여 노동계급의 역사적 이해를 결집한 강령을 제시하고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촉진시키고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이들의 단결을 도모해야 한다. 선거국면에서 혁명가들이 부르주아 노동자당에 대해 구사하는 비판적 지지 전술을 레닌은 “교수집행인의 올가미”로 비유했다. 이 올가미는 노동운동 내의 부르주아 하수인인 개량주의자들을 결국 끝내줄 것이다. 맑스주의자들은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이 목적을 성취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노동계급을 사칭하는 권영길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IBT, ‘제 16대 대통령 선거에 대한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의 입장’, 2002년 12월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2004년 총선 이후,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배신적인 자신의 모습을 노출시키기 시작했다. 나아가 남한과 미제국주의자들의 북한 자본주의 복귀 책동에 맞서지 않고 북핵 방어를 거부하고, 인민전선의 체결을 통해 노동계급 독자성의 원칙을 훼손한 사실은, 비판적이라는 수식을 붙인 지지도 보낼 수 없는 결정적인 계급 배신행위이다.
그것은 첫째로, 설령 쁘띠부르주아 이상주의자들의 눈에는 그것이 추하거나 심지어 창피해 보일지라도,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적 성과물을 방어할 것을 거부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사상적 물질적 성과물이자 미래 투쟁의 발판을 제거하고자 하는 세계 부르주아들의 공격에 동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트로츠키가 퇴보한 노동자 국가인 소련에 대해 좌우의 공격 모두를 감내하며 그러했던 것처럼, IBT는 그것이 기형적이라 할지라도 자본가 계급의 자본주의 복귀 책동에 대해 기존의 노동자 국가를 군사적으로 방어한다. 이런 점에서 IBT는 국가 자본주의론자들이나 부르주아 평화주의자들과 구별되고자 한다.
둘째로, 인민전선의 체결로 말미암아 선거기간의 공동 전선 전술의 하나인 비판적 지지 전술을 더 이상 구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거 기간의 비판적 지지 전술은, '조직기반은 노동계급이나 강령은 부르주아적'이라는 부르주아 노동자당의 내부 모순을 극대화시켜, 노동계급을 개량주의 친자본주의 지도부의 영향력으로부터 떼어내고 혁명진영으로 전취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부르주아와의 정치적 연대로 말미암아 이 모순이 효과적으로 억압 은폐된 상황에서 비판적지지 전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IBT는 NL 그룹, 다함께 등 인민전선을 추구하는 계급 화해주의자들과 걷고자 하는 길이 전혀 다르다.
결론적으로, IBT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을 비판적으로도 지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계급 배신행위가 명백히 드러난 민주노동당 내의 분리 움직임을 지지한다. 하지만 그 분리가 진보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강령에 입각한 분리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남한의 노동자들과 정치조직들이 이번 대통령 선거를 적극적으로 거부할 것 즉, 선전의 연단으로 이용하되, 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훼손하는 행위 등을 통해, 노동자들이 대선에 나선 모든 정당에 대한 지지를 거부할 것을 호소한다.
7. 제 4인터내셔널 재건을 위하여!
"노동계급의 이해는 강령의 형태로만 올바로 표현될 수 있다. 그리고 강령의 내용은 당을 건설하는 것을 통해서만 옹호될 수 있다. 노동계급은 그 자체로는 착취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이해를 옹호하는 정치적 계급으로 변모하는 순간 노동계급은 독자적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것은 오직 당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당은 노동계급이 계급의식을 획득하는 역사적인 기관이다"--- 트로츠키 , <다음에는 무엇이?> (1932년)
지금까지 국내와 국제 혁명 투쟁을 통해 단련된 강령에 기초하여, 구체적이고 정확한 전망을 제시해내는 혁명적 전위 조직을 건설해 내는 것! 이것이 남한 사회주의 운동에서 가장 긴급한 과제이다. 한국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 가운데 하나이며,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계 금융자본의 초과 착취 현상은 세계 자본주의와의 직접적 관련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 대항한 노동계급의 투쟁은 그러한 국제주의적 조망과 연대, 그리고 거시적 시각 속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IBT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헌신할 세계의 모든 개인·조직들과 더불어, 한국의 혁명정당 그리고 제 4 인터내셔널 재건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 우리는 트로츠키의 이행강령 그리고 우리가 정치적 사안마다 제출한 문서들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우리의 기본적 강령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1. 노동자들의 모든 부분적 경제적 방어적 요구를 지지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 혁명 투쟁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이행 강령을 제출한다.
2. 제국주의의 자본주의 반혁명 기도에 맞서, 중국, 북한, 쿠바, 베트남 등 기형적인 노동자 국가를 방어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지역 노동계급의 정치혁명을 호소한다.
3. 자본가 계급에 맞선 노동조합 등을 포함한 노동운동을 방어한다. 하지만 동시에 친자본주의적인 지도부를 혁명 강령을 수행할 지도부로 대체한다.
4. 지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전개되고 있는 저항을 포함하여, 식민지나 신식민지에서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기 위한 투쟁을 군사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동시에 부르주아나 반동적인 종교지도자들을 정치적으로 반대한다.
5. 선거 시기 자유주의 부르주아나 모든 종류의 인민전선에 대해 어떤 정치적 지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부르주아 억압으로부터 그들을 군사적으로 방어한다.
6. 우리는 인민의 호민관이다. 우리는 이민자들의 완전한 권리 확보를 위해 그리고 인종, 민족, 종교, 성,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과 억압에 대해 철저히 맞서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