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해년(1911) 스무아흐랫날 아침에 형렬이 와서 천후께 딸 죽은 일을 알외거늘, 천후 치상비를 후히 주시고, 태인 도듭실 유응화에게서 족도리와 원삼을 빌어다가 새롭게 단장하시고 사인교를 타시고 약장과 모든 물건을 짐꾼에게 지워 앞세우고 대흥리로 돌아오사, 약장과 모든 기물을 침방에 봉안하고 부벽시(附壁詩)는 벽에 부치고 벽 발랐던 종이는 뭉쳐서 천반자(천장) 속에 갊어 두시니, 온 집안사람들이 모두 놀래어 이상히 여기더라.
이에 천후 친자종도들을 소집하여 교단창립을 선언하시고 여러 종도들에게 명하사 포교에 힘쓰게 하시고, 신경원과 김병욱에게 명하사 태인장에서 큰 소 한 마리를 사다가 기르시면서 신정을 행하시니라. (천후신정기 pp24-25)
* 증산상제님께서 회문산 오선위기 도수를 보시며 조선 국운을 정하리라 하시고 공사를 행하실 세, 천하시비신순창운회(天下是非神淳昌運回)라 쓰시어 가라사대 "천하의 모든 약소국이 이 공사로 인하여 조선이 풀리며 자연히 따라 풀려 나가리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천하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후에는 상씨름이 될 것이요, 씨름판에는 소가 나가면 판은 걷어치우게 되느니라." 또 가라사대 "씨름판때는 나무 삼팔때를 세우고 만국재판소를 우리나라에 설치하노라." 하시었다 하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p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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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주는 증산상제님으로부터 의통천명을 받아 선천오만년동안 쌓인 신명과 인간의 원(寃)과 한(恨)을 태을주로 해원하는 것입니다. 고수부님께서는 증산상제님의 <단주수명 태을주>의 천지공사내용이 온전히 세상에 드러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신정공사를 보셨습니다.
태인장에서 큰 소 한 마리를 사다가 기르시면서 단주수명자가 소기운을 띠고 세상에 인간세상에 태어나도록 하셨고, 때가 되면 상씨름판에 태을주를 들고 본격 출세하여 의통성업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신정공사를 보셨습니다.
태을도는, 단주수명자가 을해(乙亥,95)년 음력 6월 13일에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으로부터 천명과 신교를 받고 여러 준비과정을 거쳐,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하기 직전인 무인(戊寅,98)년 음력 4월 29일에 공식 출범한 것입니다.
태을도는 태을주를 수련하고 전수하며, 의통성업에 필요한 증산상제님 신앙인들을 수렴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증산신앙의 결실이 태을도로 맺어질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