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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보(소식)게시판 

    제목 <학습지노조 서울·경기지역 조합원을 위한 노동강좌> - 제4강 2010년 7월10일(토) 오후3시 [노동자 역사인식과 노동운동사 /박준성], 민주노총 서울본부 2층 교육장
    번호 2964 분류   조회/추천 16173  
    글쓴이 학습지노조 서울경기본부(http://www.eduwork.org/)
    작성일 2010년 07월 04일 03시 50분 36초


    제2기 학습지노조 서울·경기지역 조합원을 위한 노동강좌 제1강 진행 모습 (2009년 11월 14일)








    <제2기 학습지노조 서울·경기지역 조합원을 위한 노동강좌>



    학습지노조 서울경기본부는 2007년 12월부터 총 8강에 걸쳐 진행한 바 있었던 노동강좌를 다시 새롭게 준비하여 2009년 11월부터 제2기 학습지노조 서울·경기지역 조합원을 위한 노동강좌를 아래와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이 노동강좌는 학습지노조 서울·경기지역 조합원 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것인 바 학습지노조 서울·경기지역 조합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특히 제1기 노동강좌에 참여하지 못했던 조합원께서는 꼬~옥~ 참석하여 주십시오.


    - 2009년 11월부터 홀수달(두달에 한번) 둘째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정기적으로 진행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 변경 가능]

    -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서울경기본부 조합원 교육 사업으로 진행(서울·경기지역 조합원 교육)

    - 다른 지역 조합원, 비조합원, 연대단위(노조, 노동단체 등) 구성원도 참여 가능. 단 참여시 장소, 자료 준비 등을 위해 필요하오니 사전에 연락을 꼭 해주십시오.[학습지노조 서울경기본부 황창훈 010-2222-5264, 여민희 019-253-5073]




    1강(2009년 11월 14일 토요일 오후 3시)/ 한국 사회 노동문제 바로 알기

    강사: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장소: 민주노총 서울본부 1층 강당



    2강(2010년 1월 9일 토요일 오후 3시)/ 경제위기 시대의 노동자 철학
    강사: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장소: 민주노총 서울본부 1층 강당


    3강(2010년 3월 13일 토요일 오후 3시)/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2010년 노동자의 삶-
    강사: 안건모 [월간 <작은책> 발행인]
    장소: 민주노총 서울본부 1층 강당



    4강
    (2010년 7월 10일 토요일 오후 3시)/
    노동자 역사인식과 노동운동사
    강사: 박준성 [노동자교육센터 부대표]
    장소: 민주노총 서울본부 2층 교육장
    (찾아오시는 길 :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1번 출구로 나온 후 → 20m 직진후 우회전 → 정보학원 2층)


    5강(2010년 9월 11일 토요일 오후 3시)/ 미정

    강사: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장소: 민주노총 서울본부 1층 강당




    *4강 노동강좌 강사 소개


    박준성


    박준성


    1956년 1월 강원도 홍천 서석의 조그마한 동네에서 태어났다. 중학교까지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다. 눈에 담아 둔 농사일, 뒷동산과 개울가라는 배움터가 있던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긴다.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려고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역사를 공부했다. 1980년 "광주"와 그 이후 줄줄이 이어진 젊은 청춘들의 죽음이 노동자 민중의 역사를 연구하고 교육을 통하여 현장과 직접 만나라고 부추겼다.
    1984년부터 1989년까지 규장각 조교를 했으며, 1984년 가을부터 여러 대학을 오가며 강의를 했다. 자기 연구실이 따로 마련되지 않는 시간강사 생활을 오래 했다는 뜻이다. 그해 여름부터 이제까지 노동운동·민중운동 단체에서 "역사와 역사 철학", "노동자의 역사 철학", "한국근현대사", "노래로 보는 근현대사", "슬라이드로 보는 노동운동사" 같은 강의를 하였으며 역사 현장을 찾아 역사 기행 안내를 해 왔다.
    1988년 11월 12일, 뜻 맞는 연구자들과 함께 <구로역사연구소>(지금 역사학연구소)를 만들어 신명나게 활동했고, 『바로 보는 우리 역사』를 같이 썼다. 1991년 말부터 "슬라이드로 보는 근현대사" 강의를 시작하여 1994년 "슬라이드 근현대사 200장면"을 만들었다.
    1994년 7월부터 산행과 역사 기행을 함께하는 <역사와 산>을 시작하였다. 한 달에 한 번씩 가는 <역사와 산> 산행은 지금까지 한 달도 거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인 2002년, 노동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박사 학위 논문 쓰는 것을 포기하였다. 나이 마흔일곱 살 때이니 "철딱서니" 없게 산다는 말을 들을 만도 하다. 그래도 남보다 역사 기행을 더 많이 다니고, 산행도 함께 하고, 손바닥만 한 텃밭일지라도 이따금씩 손에 흙을 묻혀 보기 때문에 계절 바뀌는 것도 모르는 철부지는 아니라고 변명한다.
    2003년, 노동 교육 활동가들과 함께 <노동자교육센터>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노동자가 스스로 자기 역사를 써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노동자 역사 한내>에도 발을 담그고 있다.
    『1862년 농민항쟁』, 『농민전쟁 100년의 인식과 쟁점』, 『노동자, 자기 역사를 말하다』, 『인물로 본 문화』,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같은 책에 한 꼭지씩 글을 썼다. 2009년 6월에 『박준성의 노동자 역사 이야기』를 출간했다. 『작은책』 편집위원으로 있으면서 살아온 이야기와 역사를 연결하여 「추억 따라 세월 따라」를 연재하고 있다.
    2003년 말부터 간암과 임파선 전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항암 투병의 일환으로 3년여 동안 미친 듯이 목공예와 소목을 배웠고, 하남에 있는 대안학교 <푸른숲학교>에서 4년 동안 목공예 전문 교사로 아이들에게 목공예를 가르쳤다. 2008년부터는 나무의 근원을 알고 생태적 감수성을 몸에 익히려고 자연과 생태에 관심을 가지고 숲 해설사 전문가 과정을 마쳤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리에서 여성과 어린이의 눈으로 생존과 생태라는 거울에 현실과 미래를 비춰 보아야 세상을 바로보고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千思不如一行"(천 번 생각하는 것이 한 번 행동함만 같지 못하다)을 읊고 다닌다.





    강사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신 분을 위해 이 공지 맨 아래에 박준성 님을 소개한, "하종강의 노동과 꿈" 홈페이지(www.hadream.net)에 있는 하종강 님의 글을 첨부하오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이후에도 계속 강좌를 준비하여 진행할 예정입니다.


    * 문의: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서울경기본부 사무국장 여민희 019-253-5073






    학습지노조 서울경기본부

    www.eduwork.org











    [첨부]

    "하종강의 노동과 꿈" 홈페이지(www.hadream.net) "박준성의 역사사랑방"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하종강 님의 글 [2005년 3월 1일]




    <소개> 박준성 선생은...


    박준성 선생은 우선,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입니다. 여러 대학과 교육기관에서 역사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강의는 대학에서도 돋보이지만 1984년 8월 여름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쉬임 없이 하고 있는 역사와 역사 인식, 노동자의 역사와 철학, 한국근현대사, 노동운동사, 역사기행 안내를 내용으로 하는 노동교육, 민중교육이야말로 한국 교육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훌륭한 강의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역사학연구소 연구원, 산행 역사 기행 모임 "역사와 산" 고문,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교육위원, 철도노조 민주화를 위한 지원연대 운영위원, [진보평론] 회원 등의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긴 말 할 필요 없이 하종강이 쓴 아래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노동자여, 역사를 써라”

    박준성 노동자교육센터 소장, 이보다 더 화끈한 강사는 없다

    지난해 여름, 박준성(47)씨와 함께 전남대병원 파업현장을 방문했다. 전남대병원노조 간부가 우리 두 사람을 파업하는 노동자들 앞에 굳이 불러세우더니 “한 말씀 하시라”고 했다. 나는 평소 하던 대로 “우리가 이렇게 파업할 수 있는 권리는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신성한 노동기본권으로서…” 어쩌고 하며 짧은 일장연설을 했는데, 마이크를 넘겨받은 박준성씨는 “파업하느라고 수고 많으신 동지들께, 저는 위로삼아 노래나 한곡 불러드리겠습니다”라고 입을 열더니 대번에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젖히기 시작했다.

    파업현장을 ‘소름 돋게’ 하다


    사진/ 역사의 주인인 노동자에게 자신의 역사를 들려주고 싶다는 박준성씨. 그는 노동자들이 역사를 재구성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역사의 주체로 설 수 있다고 말한다.


    “믿는다 믿어어라아 벼언치말자 누가 머언저 마알했더언가. 에라. 이 씨팔놈들아! 잘먹고 잘살아라! 믿으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노동자의 피땀을 빨아먹느냐 이 개새끼들아!”

    박준성씨가 노래를 하다 말고 갑자기 병원 로비가 떠나가라 욕을 해대기 시작하자 옆에 서 있는 나는 물론 병원 로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모두 움찔했다. 실제로 사람들이 어깨를 일시에 움츠리는 것이 보였다. 파업현장은 일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렇다. 박준성씨가 그렇다. 노동교육을 하러 갈 때 나는 예의를 갖춘다고 말끔한 신사복 차림일 때가 많은데 박준성씨는 언제나 허름한 등산복 차림이다. 등에는 항상 배낭을 메고 다닌다. 동산복에 배낭을 짊어지고 수련회에 참석한 노동자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넘기도 한다. 배낭에서 큼지막한 환등기를 꺼내는 것으로 그는 강연을 시작한다. 대부분 2시간 정도 걸리는 역사 강연에 200장 넘는 슬라이드 사진을 사용한다. 강의 도입부분, 사진 한장과 함께 그의 목소리가 강의장을 가득 메우며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세계 대공황 시기, 일본은 자국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군국주의 체제를 강화하고 대륙 침략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조선을 견고한 후방기지·병참기지화하면서 조선 민중과 민족해방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1928년, 100만명에 이르는 조선인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의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성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일본인 노동자의 반, 여성 노동자는 4분의 1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전시 인플레이션으로 물가는 폭등했으며, 임금은 기아 수준으로 폭락했습니다.


    사진/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 노동자, 강주룡을 아십니까?" 박준성씨가 교육 때마다 슬라이드로 보여주는 1931년 평원고무공장 노동자의 농성 장면.


    1931년 5월16일, 평양 선교리에 있는 평원고무공장에서 회사쪽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내리겠다고 통고하자 노동자들이 격분해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28일 밤, 파업이 시작된 뒤 공장을 점거하고 시위를 계속하던 노동자들이 아사(餓死)동맹을 결의하자 기업주가 경찰을 불러들여 노동자들을 회사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일본 경찰과 손을 잡은 자본가들에 의해 노동자들의 파업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서 쫓겨난 여성 노동자 강주룡은 노동자들의 희망과 꿈이 폭력에 의해 사그라지는 현실에 분노하며 밤새 광목을 찢어 줄을 만들었습니다. 다음날 평양에서 가장 높은, 대동강가 높이 12m 되는 을밀대 지붕 위에 줄을 던지고 타고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일제가 얼마나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탄압하는지 고발하면서 9시간 반 동안이나 그곳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우리 49명은 파업단의 임금감하를 크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종국에는 평양의 2300명 고무직공의 임금감하 원인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죽기로써 반대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배워서 아는 것 가운데 대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명예스러운 일이라는 것이 가장 큰 지식입니다. 나는 근로대중을 대표해 죽음을 명예로 알 뿐입니다.”

    경찰에 잡혀 평양서로 끌려간 강주룡은 76시간 동안 단식하며 대항하다 검속기간이 끝나 풀려났습니다. 풀려난 뒤에도 계속 파업단 대표로 활약하다 다시 공장습격사건으로 잡혀 들어갔습니다. 강주룡은 다시 57시간 옥중단식을 벌이다가 극심한 건강쇠약 증세로 31년 6월4일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검거와 단식, 석방을 거듭하며 노동운동의 중심에서 활약하다 건강을 해친 그는 32년 8월14일, 평양 서성리 빈민굴에서 숨졌습니다. 그때 나이 31살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 노동자, 강주룡을 아십니까”

    두 시간 일사천리, 눈이 젖는다

    두 시간 동안 일사천리로 울려퍼지는 그의 말을 들으며 사람들은 70년 전 노동자 선배의 절절한 결단이 가슴에 사무쳐 목이 잠기고 눈이 젖는다. 그의 슬라이드는 계속 넘어간다. ‘전평’을 넘고 ‘전태일’을 넘고 ‘동일방직’과 ‘YH투쟁’, ‘부마항쟁’을 거쳐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지평이 열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가슴이 벅차올라 숨쉬기조차 버겁다.

    “역사의 주인인 노동자 민중에게 자신의 역사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개인에게 자서전이 있는 것처럼 노동자들도 자신과 노동운동에 대한 역사쓰기를 하면 좋겠어요. 역사를 재구성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역사의 주체로 설 수 있습니다. ‘이길 때까지 지는 싸움’의 역사 한가운데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자는 겁니다.”

    박정희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던 70년대 중반 대학에 들어가 80년대를 살아야 했을 역사학도에게 시련의 시기가 어찌 없었으랴. <청춘고백>을 그가 즐겨부르게 된 사연 역시 눈물겹다. 1990년대 초반은 세계사 대격변의 시기였다. 소비에트가 하루아침에 해체되고, 동구의 현실 사회주의 국가는 몰락했으며, 국내에서는 운동권 90% 이상이 선택한 ‘비판적 지지 노선’이 대통령 선거에서 무참히 패배했다.

    “그즈음인데 한 운동단체 노동교실에 갔더니 사람이 4명밖에 앉아 있지 않는 거예요. 그런 교육 한번 하려면 몇달 동안이나 준비하잖아요. ‘앉아서 강의 듣는 것만 교육이냐, 술 마시며 세상 이야기하는 것도 교육이다’ 그런 생각으로 사람들과 함께 술 한잔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사람들이 속상해서 울고, 나는 달래다가 울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본주의 모순구조를 인정하는 거고 미국놈들과 타협하는 거다’라는 생각으로 끊은 담배를 그날 7년 만에 다시 피웠어요. 혼자 집으로 돌아오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데, 우리를 가르친 선배들, 노동현장에 있는 지식인 활동가들, 그러다가 썰물처럼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 생각이 나고…. 혼자 술에 취해 길을 걷는데 나도 모르게 ‘믿는다 믿어라 변치 말자 누가 먼저 말했던가…’ 그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혓바닥에 단맛 들면 사람 버린다”

    그는 대학을 전체 수석으로 졸업했고 석사·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지금도 대학에서 한국근현대사 강의를 하고는 있지만 “혓바닥에 단맛 들면 사람 버린다”는 생각으로 기득권 세력에 등극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했다. ‘역사학연구소’ 연구원, 산행·역사기행 모임 ‘역사와 산’ 고문,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교육위원 등으로 바쁘게 활동하는 그가 요즘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노동교육의 성과를 집약하고, 노동자 교육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담당하는 일에 디딤돌을 놓기 위해 ‘노동자교육센터’를 설립하면서 김진순·신재걸씨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은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어떤 일보다 부담스러운 교육센터를 만들고 활동하는 일에 얼마만큼 나를 던질 수 있을까, 내가 할 몫을 감당할 수 있을까, 밤을 지새우면서 고민합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도와줄 거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역사’와 함께하는 내 희망의 근거니까요.”

    평소에도 “슬라이드 교육은 일정한 시설을 갖춘 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길거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교육할 수 없는 것이 슬픕니다”라고 말해온 박준성씨가 ‘노동자교육센터’를 통해 꿈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희망의 근거가 될 것이다.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아래 사진은 위 글 중에 나오는 전남대병원 파업현장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왼쪽이 박준성씨, 오른쪽이 하종강입니다. "돈벌이 중심 병원을, 사람 중심 병원으로!" 참 좋은 표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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